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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을 공유하고 모르는 것을 함께 공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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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준 전문가
맑은글터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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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시조에는 연과 행의 구분이 있을까요?
시조의 경우 현대의 시처럼 초장 중장 종장의 45자 내외로 구성되어있기에 따로 연으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시조의 경우에도 평시조는 한 수의 시조가 여러 편이 합쳐져 있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연시조라고 하며 시조 한 수가 전체 작품에서는 하나의 연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 수의 초장, 중장, 종장은 각각의 행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최초의 연시조는 조선 세종 때 맹사성이 지은 입니다. 그리고 이황의 「도산십이곡」과 이이의 「고산구곡가」, 그리고 주세붕의 「오륜가」, 정철의 「훈민가」 등도 대표적인 연시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대부분 유교적인 사상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윤선도는 문학적인 재미, 상상력, 표현의 다양성을 나타냈는데 이러한 작품들이 「오우가」 여섯 수, 「견회요」 다섯 수, 「만흥」 여섯 수, 「어부사시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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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가인박명이라는 사자성어는 왜 나왔을까요??
'佳(아름다울)가 人(사람)인 薄(얇을)박 命(목숨) 명'의 뜻은 ‘아름다운 사람은 명(命)이 짧다 즉, 여자의 용모가 너무 아름다우면 운명이 기박(奇薄)하다는 뜻입니다.이 사자성어의 유래는,북송 후기 적벽부를 지은 소식의 가인박명시에 나왔다고 합니다. 그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雙頰凝 髮抹漆 眼光入廉珠的白樂 쌍협응 발말칠 안광입렴주적백악故將白練作仙衣 不許紅膏汗天質 고장백련작선의 불허홍고한천질吳音嬌軟帶兒癡 無限間愁總未知 오음교연대아치 무한간수총미지自古佳人多命薄 閉門春盡楊花落 자고가인다명박 폐문춘진양화락하얀 두 볼에 옻칠한 듯 까만 머리쳐놓은 발에 비치는 눈빛은 옥같이 빛나네흰 비단으로 선녀의 옷을 지으니타고난 아름다움을 더럽힐까 연지 또한 거부하네오나라 사투리의 애교 섞인 목소리 아이처럼 앳띠나그 속 한없이 담긴 수심 도무지 알 수가 없네예로부터 아름다운 여인 모두 그 운명 기구하니닫힌 문 밖 봄이 다하니 버들꽃 떨어지는구나이 시 중 마지막 구절인 '自古佳人多命薄 閉門春盡楊花落'에서 나온 것처럼 아름다운 여인들이 버들꽃 지듯이 평균수명이 짧았으니 안타까움에 노래한 것이 지금까지 전해오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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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과 후의 시가문학은 어떤변화를 가지고 있나요?
조선시대의 시가는 전기는 평시조라 불리는 사대부시조가 중심을 이루어 충절, 자연진화, 인격수양 등 유교적 내용이 주를 이루었으나 후기로 가면서 사설시조라는 명칭의 평민시조가 등장하면서 전후 평민들의 생활상, 고위층에 대한 비판, 해학 등의 내용이 발달하였습니다.시조와 가사 문학 형태로 시조는 계속 시의 형태로 바전하였고, 가사의 경우 내용상 교술적인 형태도 띠고 있어서 운문에서 산문으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성격도 있었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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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의 기녀들의 시조는 연애편지될수 있었나요?
예전에는 직접적으로 서술하여 사랑을 나누는 연애편지보다 한시를 지어 마음을 담는 일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 글을 공부한 기녀들의 경우 신분이 높은 손님들과 한시를 지어 글로 마음을 전하거나 만났을 때도 마음을 싯구로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습니다.우리에게 잘 알려진 황진이와 매창의 경우에도 한시와 시조를 많이 지었습니다. 황진이는 서경덕에 대한 사랑을, 매창은 유희경, 이귀와 연인이었는데 서로를 향해 지은 시조가 가히 당대 문인들과 겨줄만한 수준이라고 당대 최고의 시 비평가였던 허균이 극찬했다 합니다. 이렇듯 시와 시조로 사모하는 마음을 표현하였으니 연애편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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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부하는 사람들한테 왜 용비어천가를 부른다고 하나요?
「용비어천가」는 조선 세종 때 선조인 목조에서 태종에 이르는 여섯 대의 행적을 노래한 서사시입니다. 내용은 세종의 직계 할아버지 여섯 분의 행적을 노래한 것인데, 그들의 위상이 하늘의 명을 받들었다는 중국의 제왕처럼 묘사하여 이 여섯 선조 역시 하늘의 명을 받았다는 것을 칭송하는 노래입니다. 왕명에 따라 정인지, 안지, 권제 등이 짓고 빅팽년, 성삼문, 이개가 주석을 달았고, 정인지가 서문을 쓰고 최항이 발문을 하였는데 당시 그 글이 너무 왕족을 칭송하는 낯간지러운 아부의 글이라 그 이후 누군가에게 아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해 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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