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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낙지284
단정한낙지28423.05.12

아즈텍 문명은 잔인했다고 알려졌는데 진실인가요?

알려진 바에 의하면 아즈텍문명이 굉장히 잔인했다고 들은것 같은데요.

정말 그렇게 잔인햇을까요?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사실 멀쩡히 잘살고있는 나라들을 침곡해서 식민지화하고 정당화 했던 유럽나라들이 훨씬 잔인한것 같거든요.

이런 침략을 정당화하기위해 타문명을 잔인하게 몰고 간건은 아닌가요? 아즈텍문명이 정말 잔인했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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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12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즈텍 제국의 기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

    13세기 당시, 북부 멕시코 사막 지역의 치치멕족 일파인 메시카인들이 바로 아즈텍의 기원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들은 황량한 사막인 북부 지역에서 중앙 멕시코 지역으로 남하했다.

    이방인들인 메시카인들이 중앙 멕시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쓸모있거나 훌륭한, 즉 대규모 세력이 강성해질 수 있는 알짜배기 땅들은 다른 집단들이 선점하고 있었다. 그래서 메시카인들은 이러한 지역 국가들과 거대 국가들에서 용병으로 활약하며 땅과 안전을 보장받았다. 그렇게 힘을 쌓아 나가던 1299년, 메시카인 집단의 지도자였던 '우이칠리우이틀'(Huitzilihuitl)은 충분히 강성해졌다고 판단한 후, 메시카인들과 자신을 독립국과 그 국가의 군주, 즉 틀라토아니임을 선포하며 용병과 조공을 끊겠다고 포고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강대국이었던 콜후아칸, 즉 콜후아족의 공주를 인신공양하여 가죽을 벗겼다는 말이 있으나, 이는 디에고 두란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료, 특히 원주민들의 사료에서는 나오지 않고, 메시카인들이 콜후아칸의 공격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또한 아즈텍의 제1대 틀라토아니인 '아카마피치틀리'의 부모 중 모친은 콜후아족 공주 출신이었으니, 메시카인들이 콜후아족 공주를 인신공양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표현이거나, 후술될 치말쇼치틀과 우이칠리우이틀의 인신공양이 와전된 것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콜후아족에게 선전포고를 한 이후, 《보투리니 문서》(Codex Boturini)에 의하면 메시카의 선전포고를 받은 콜후아칸의 '코슈코슈틀리'(Coxcoxtli) 왕이 메시카를 공격해서 막대한 피해를 입혔고, 그 과정에서 우이칠리우이틀과 그의 딸 '치말쇼치틀'(Chimalxochitl)이 붙잡힌 이후, 결국 콜후아칸의 제단에서 희생되었다. 그렇게 메시카인들은 콜후아칸의 지배하에 복속되었고, 관리와 감시가 용이한 늪지대 티사판(Tizaapan) 지역에 정착지가 만들어지며 속국화가 이루어졌다.

    속국화 이후 《틀라텔롤코 문서》(Codex Tlatelolco)에 의하면 속국화된 메시카는 다시 콜후아칸의 용병이 되었다. 이후 콜후아칸 왕 코슈코슈틀리는 메시카에게 불가능한 임무를 준 후, 끝내지 못한다면 끔찍한 처벌이 기다릴 것이라고 포고했는데, 이러한 임무들 중 하나가 '맨몸으로 쇼치밀코의 전사들을 이기고 돌아와라'라는 것이었다. 메시카 전사들은 그의 말대로 맨몸으로 쇼치밀코 군대를 기습하여 결국 이기고 돌아왔다.

    출처: 나무위키 아즈텍 제국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처음 아즈텍 제국이 세워진 이유는 멕시카 민족이 떠돌다가 한 부족의 용병으로 다른 부족과 계약을 맺었는데 그 부족장의 딸을 여신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데려가 그 딸의 가죽을 벗겨 제사에 쓴 이후로 그 부족이 멕시카 민족을 몰살시키려 해 멕시카가 쫓겨나 세운 제국이 아즈텍의 건국 신화입니다.

    또한 인신공양의 사례도 다양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즈텍 종교의 중요한 특징이 ‘인간제물’입니다. 신의 화를 달래기 위하여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중앙아메리카에서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아즈텍 문명에서는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였습니다. 1487년 Great Pyramid of Tenochtitlan 재봉헌식에서 아즈텍이 4일 동안에 8만4천 4백명의 죄수들을 제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발견되었습니다.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는 기록인지는 불분명하지만 2000여 명의 인간제물을 드리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고 역사학자들이나 고고학자들이 주장합니다.

    -출처:늘푸른 나무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식인 풍속이 성행했고 다른 부족을 약탈해서 종으로 부려먹고 제사 때 종의 심장을 도려내서 바쳤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