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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을 보면 유비등 유능한 장수들은 누구를 위하여 전쟁을 치뤘을까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승상이 되어 남하하던 조조군을 막기 위해, 함께 피난을 떠나온 백성들의 발이 느려지자 결국 유비는 조조에 대항하기 위해 손권과 힘을 합쳐서 조조군을 막아냈던 전투가 적벽에서 치뤄진 전투였죠. 당시 조조의 기세는 상당히 거셌고, 이로 인하여 조조에게 투항하던 이가 속출할 정도로 기세가 강했지만 결국 적벽대전에서 기세가 꺾이게 되죠.말씀하셨던대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손권 등 수많은 영웅들이 기본적으로는 백성을 위함도 있었겠지만 당시 혼란했던 시대에서 한쪽은 황제를 지키기 위해서, 한쪽에서는 본인의 가문을 위해, 또다른 이는 백성을 위해 싸우기도 했던 혼란한 시대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물론, 지금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계엄령에 따른 엄청난 혼란이 과연 국민들을 위함이었는지가 의문이라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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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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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를 보면 시국선언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혹시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단어를 들어본적이 있으실까요!? 사실 역사를 공부해본 사람들이라면 아실 표현인데, 고종황제의 승인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되게 되는데 이를 규탄하는 의미에서 1905년 11월 20일에 황성신문 주필인 장지연이 "이 날에 목 놓아 우노라"라는 표현으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표현 하였었죠.말 그대로 시국선언 또한 현시점의 일에 대하여 우리는 부당함을 공공의 사람들에게 알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시국선언은 3.15 부정선거 이후 이승만 정권의 퇴진을 위한 시국선언 이후 이승만이 하야 했고, 1986년 민주항쟁의 시발점이 된 시국선언도 있었으며, 이후 각 정권에서 시국선언이 나오게 되죠.예전의 시국선언의 경우 아시겠지만 서슬퍼런 정권 하에서 시국선언을 한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정말 위험을 무릎 쓴 행동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현대에서는 독재정권 당시보다 위험도는 낮겠지만 시국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나 부담감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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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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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인 이라는 단어가 쓰이게 된 유래가 따로 있는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미망인이란 단어 자체가 아닐 미, 죽을 망, 사람 인 이라는 한자를 사용하는데요. 아직 죽지 않은 사람 혹은 따라 죽지 않은 사람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며 이는 과부라는 표현과 혼용되어 사용 되는 단어 입니다. 즉, 남편이 먼저 죽어서 남게 된 여인을 부르는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미망인이라는 용어는 춘추좌씨전의 장공편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표현이며, 참고로 춘추좌씨전은 공자가 쓴 역사서 춘추에 대한 주석서로서 기원전 750년 부터 약 250년 정도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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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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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중 동지는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동지는 말씀하신대로 밤이 가장 긴날이면서도 반대로 밤의 길이가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는 그런 날이죠. 그렇기에 이날은 집안의 귀신을 쫓고 안녕을 기원하면서 대문이나, 창문, 벽 등에 단팥죽을 뿌리는 풍습이 있는데요.제가 어린 시절에도 할머니께서 직접 팥죽을 끓이셔서 팥죽을 뿌리시면서 기도를 하시기도 했었던게 기억 납니다.또한 팥죽을 끓일 때 찹쌀로 새알을 빚어서 넣고 나이만큼 먹는 그런 것도 있었습니다!!^^ 동지의 경우 새해가 멀지 않았기에 그런 풍습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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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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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고인이 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군사 쿠테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된건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네. 맞습니다. 전두환은 12.12 군사정변(쿠데타)를 통해서 권력을 잡고 대통령에 오른 인물입니다.박정희가 권력의 중심으로 전두환을 이끌었는데요. 당시 소장계급이었던 전두환을 중장급이 맡아야했던 보안사령관으로 앉힌 것이죠.보안사령관이 된 전두환은 10.26 박정희 피살사건으로 인하여 단숨에 정치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는데요. 제주도를 제외한 계엄령이 내려지자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이 최고권력이 된 것이죠. 그러다가 12.12 군사쿠데타까지 이어지면서 전두환은 하나회라는 군대의 사조직을 통해서 대통령 자리까지 오르죠.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불법적으로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불법 비자금, 5.18민주항쟁 탄압 등 수없이 많은 악행들을 행하다가 얼마전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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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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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반란의 원인은 결국 박정희 대통령에게 있죠?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박정희 대통령과의 연결성으로 본다면 충분히 개연성은 있다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정희가 전두환을 보안사령관으로 1979년 3월 5일에 임명하게 되는데요.이를두고 박정희가 남겨놓은 히든카드라는 말이 돌기도 하는데요. 박정희가 10.26 피살사건으로 사망하자 떠오른 이가 당시 보안사령관이었고, 결국 제주도를 제외한 계엄령이 내려지면서 전두환에게 모든 권력이 모이게 됩니다.이런 시기에 전두환은 빠르게 하나회를 통해서 군사력을 집중했고, 12.12 군사쿠데타를 통해서 권력의 최고봉에 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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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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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독립운동이 테러가 아닌 왜 의거라 불리는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독립운동 중 발생했던 의거, 지금 현대 시대에 나오고 있는 테러의 차이는 분명한데요.독립운동가의 의거는 특정한 대상만을 지정해서 일어난 것이죠.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역 의거, 이봉창의사, 윤봉길 의사가 있었습니다. 테러는 말 그대로 특정인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향해 공격을 가하는 것이죠.추가적으로 우리 독립운동가 분들은 의거 이후 본인들이 행했고, 정당한 이유를 밝혔기 때문에 자신을 숨기고 숨어버리죠.이런 것들 때문에 독립운동가는 조국, 외국 모두가 인정하고 중국 마저도 인정하여 기념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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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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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관이라는 역사관은 틀린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근대화를 이룬 것이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식민사관이죠. 그러면 반대로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근대화를 못 했을 것이라 생각하시나요?조선 후기가 되면 분명 한계가 있지만 실학이 나오고, 일본이나 미국, 영국 등의 세계 각국의 각축전 속에서 조선 또한 변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개혁들을 준비하고 실행하게 됩니다.또한 철도, 전기 등도 조선에 들어오게 되고, 단발령, 갑오개혁 등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죠.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일본에 의한 주권침탈이 발생하었고, 미국이나 영국, 러시아, 청나라 등의 관계 속에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죠.그러면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서 근대화만 되었을까요? 수없이 많은 수탈, 인권유린, 반인권적인 행태들이 과연 근대화일까요?? 단순히 시간이 지나면서,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자체적인 개혁 등으로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던 조선을 침탈하고 식민지화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런 편협한 역사적인 식민사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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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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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 했던 베네주엘라가 최빈국으로 전략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베네수엘라는 풍부한 석유자원을 이용하여 상당한 부를 누렸던 국가 중의 하나였습니다. 현재 중동의 석유 재벌 왕국들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현재 중동 또한 석유가격 때문에 흔들리고 있는데, 베네수엘라는 조금더 일찍 위기를 겪게 됩니다.과거 석유가격이 높았을 시기에는 풍부한 석유를 수출하여 생긴 수입으로 상당한 복지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이는 국가의 수익을 국민이 나눠 갖는 모습으로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석유 자원 외에는 별다른 산업화를 하지 못한 것이죠. 돈이 넘쳐나서 별도의 국가 산업기반을 마련하지 못했죠. 그렇기에 석유 가격이 급감하는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국가의 수익이 떨어지게 되죠.또한 베네수엘라의 정치 지도자로 잘 알려진 차베스, 마두로 정권은 부패한 정권으로서 자신들의 이익 위해 정치를 하였고, 결국 이러한 정치적 불안정은 외국자본의 이탈을 가속화 시켰죠.석유가격의 하락, 정부에 의한 환율 개입,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라는 여러가지 요소들로 인하여 베네수엘라는 경쟁력을 잃었고, 속절 없이 무너져 결국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유명한 빈민국으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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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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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때 북한 군과 우리 나라 군인 중에 어느 쪽이 더 사상자가 많았을까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한국전쟁은 약 3년 동안 벌어진 동족상잔의 비극이었습니다.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양국의 군인, 민간이 뿐만 아니라 파병을 위해 지원된 UN군, 중공군까지 상당한 사망자, 부상자, 실종자가 발생하게 된 세계전쟁의 한 형태였습니다.남한의 경우 국군 사망자 137,899명, 부상자 450,000명, 경찰 사망 및 부상 10,000명 정도였으며, 북한군은 사망자 520,000명, 실종 및 포로 120,000명으로 엄청난 양국의 인명손실이 발생했습니다.추가적으로 UN군 전사자 40,000명, 부상자 100,000명, 중공군 사망자 116,000명, 부상자 220,000명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한 각국의 피해도 엄청났습니다.결국, 현재는 북한은 경제발전에 뒤쳐져서 전세계에서 가장 못살고, 인권이 말살된 곳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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