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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의 악곡 및 연주형태 알려주세요!
Violoncello는 서양 고전 음악에 쓰이는 바이올린 족의 저음역 악기로 비올라보다 한 옥타브 아래의 음을 연주하며 흔히 영국과 독일에서 첼로라는 약칭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첼로는 비올라와 함께 악기의 형태와 연주 방식 측면에서 원칙적으로 바이올린의 악기 계통에 속하지요. 다만 첼로는 크기면에서 콘트라베이스 다음으로 큰 현악기입니다. 오늘날 독주나 실내악, 현악 오케스트라 연주 등에서 낮은 음역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악기입니다. 역사적으로는 비올족의 베이스 비올(비올라 다 감바)에서 발전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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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4.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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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의 기본 구성 요소에 대해 알고 싶어요
먼저 오케스트라는 일반적으로 60명에서 최대 120명 안팎으로 구성이 됩니다. 시제를 중심으로 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타악기 순서로 구성되는 것이 기본이며 지휘자나 음악회 성격에 따라서 배치는 달라질 수 있는데 비슷한 악기군을 같이 모아두며 이건먼저 오케스트라는 일반적으로 60명에서 최대 120명 안팎으로 구성이 됩니다. 시제를 중심으로 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타악기 순서로 구성되는 것이 기본이며 지휘자나 음악회 성격에 따라서 배치는 달라질 수 있는데 비슷한 악기군을 같이 모아두며 이건.5먼저 오케스트라는 일반적으로 60명에서 최대 120명 안팎으로 구성이 됩니다. 시제를 중심으로 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타악기 순서로 구성되는 것이 기본이며 지휘자나 음악회 성격에 따라서 배치는 달라질 수 있는데 비슷한 악기군을 같이 모아두며 우선 현악기로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이며 목관악기는 클라리넷 플루트 오보에 바순이며 금관악기는 호른 트럼펫 트롬본 튜바 타악기는 팀파니 심벌즈 트라이앵글 탐탐 캐스터넷츠 글로켄슈필 마라카스 베이스드럼 스네어드럼 톰톰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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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4.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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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음으로도 노래를 잘 부르는 방법 알려주세요~
노래를 잘 부르려면 전문가의 지도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성대의 길이나 또한 성대의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먼저 자신의 음역을 알기 위해서는 성대의 길이를 알아야 합니다 고음을 잘 내는 사람들은 성대의 길이가 짧고 저음을내는 사람들은 성대의 길이가 깁니다 예를들면 목이 짧은 사람들은 성대의 길이가 짧을 가능성이 많고 목이 긴 사람들은 성대의 길이가 길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목이 짧은 사람들은 고음을 잘 내고 목이 긴 사람들은 저음을 잘 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대 운동을 통해서 성대 근육을 발달시켜 준다면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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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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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공중 화장실도 돈을 받았던 시대가 있었다는데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공중 화장실에서 사용료를 받았던 것은 정확한 것을 알 수 없지만 1970년대 중반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고속버스터미널 같은 곳이나 기차역에서 화장실 사용료와 휴지를 팔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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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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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한국과 대만의 외교단절문제 발생과 현재 외교관계는 어떠한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은 대만과 수교를 한 적이 없습니다 한국은 단지 1948년 당시 중국인 중화민국과 수교를 했고 이듬해 중화민국 정부가 타이페이로 옮겨간 후 그 외교 관계를 유지했을뿐입니다 1992년 이후에는 주중대사관이 타이베이에서 베이징으로 옮긴 셈이지만 2012년에 한중 수교 20년을 기념하는 것은 현재 중국인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는 1992년에 이루어진 것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중화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전에 외교관계를 맺었고 그 외교관계를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바티칸 등 얼마 되지 않습니다 현재 대만의 수교국은 중국 건국 이후 대만과 수교했거나 단계했거나 둘 중 하나지요 이를 구별해야 하는 이유는 구별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중국과 처음 수교한 뒤에 수교하지도 않았던 대만이라는 나라와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했다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은 중국을 중화민국의 후계국가로 아직까지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후에는 1971년이래 중국을 중화민국의 후계 국가로 인정하며 지금의 대만을 따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요 미국은 1979년 이전의 대만 수교사를 미중 관계에 집어넣고 1979년 이후의 관계는 따로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1992년 수교로 기록했으며 대만과 단교함으로써 그 외교 관계가 끝났다고 설명을 하지요 즉 대만과 중국의 외교관계가 이어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고 다만 이것은 중국식의 입장을 반영한 것일 때문일 수 있습니다. 중국은 각 국가의 수교 연패를 작성할 때 자신의 전신 중화민국과 해당국 간의 관계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대만과 대한민국을 잇는 한국노선이 존재하며 양국의 항공사들이 한국노선을 확충 및 확대하면서 양국간의 교류가 많아졌지요. 저가 항공사들이 대만행 항공 노선을 대폭 확충하면서 대만이 한국인들의 인기 여행지로 자리잡았으며 여행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대만의 미식문화가 한국에 알려지게 되었고 양국은 무비자 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며 2010년대 후반에 중국이 실시한 한한령으로 인한 한중간 갈등이 생기자 대만으로 관광하러 오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양국은 자동 출입국 심사 상호 이용 협약에 따라 양국 국민은 상대국 방문시 사전 등록 후 자동 출입국 심사 이용이 가능한 정도입니다. 아무리 단교를 했다 하더라도 한국과 대만은 비공식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으며 사실 정치적인 교류도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IT 산업 기가바이트 MSI ASUS 등의 부품회사들이 많이 교역하고 있으며 한국 관광에서도 중국 일본 미국 다음으로 많이 입국하는 나라가 대만입니다. 반대로 2014년 기준 대만 입국 관광객 역시 중국 일본 다음으로 한국이 3위이죠.다만 대만에서는 홍콩 마카오에서 온 관광객을 중국 대륙에서 온 관광객과 따로 분류하는데 이에 따르면 홍콩 마카오 관객이 3위이고 한국이 4위라고 합니다.한국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대만 브랜드는 바로 버블티 회사 공차입니다. 다만 잠시 한국법인이 인수하여 한국 브랜드였다가 후에 미국 자본이 인수하여 미국 기업으로 바뀌었고 17년에 공차코리아가 본사를 인수했기 때문에 휠라와 비슷한 케이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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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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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오랫동안 중국에게 판다대여를 요청했는데 중국은 그때마다 거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은 판다의 국외 반출을 엄격히 금지하며 현존하는 거의 모든 해외의 판다는 중국정부에 의해서 소유권을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동물종 전체에 대해 그 소유권이 특정 국가에 귀속되어 있는 사례는 흔한 일은 아니지만 판다는 중국 중남부에 서식하는 고유종으로 중국 외부에서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이 계약의 형태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판다는 멸종 위기종이며 중국의 자연 파괴가 현대만큼 심각해지기 전인 1950년대 이전부터 개체 수가 적은 동물이었습니다.중국의 급격한 산업화 후 판다의 개체수는 더욱 감소하여 1970년대에는 1000여 마리까지 줄어들었지만 연구 및 보호사업의 성공으로 현재는 2천 마리까지 늘어났다고 합니다. 판다 임대료의 상당 부분은 판다 보호 및 판다 번식과 관리의 노하우를 쌓는데 드리는 비용으로 충당이 되며 2021년 기준으로 약 50여 마리의 판다가 해외 임대되고 있는데 두 당 임대료가 100만 불이라고 쳐도 연 5천만 불 정도입니다. 인도는 대여 신청을 여러 번 했으나 인도 동물원의 관리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 및 인도와의 좋지 않은 사이 때문에 여러 번 반려했다고 합니다. 뉴질랜드도 2010년 존키 총리가 판다 도입을 중국 정부의 협상을 통해 시도해 보려고 했으나 결국은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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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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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최영장군을 죽인건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 예술 전문가입니다.부대를 이끌고 북진하던 이성계는 위화도 근처까지 진군하였으나 비가 쏟아져 길이 막히게 되고 개경의 우왕과 최영이 회군해 달라는 요청을 끝까지 거부하자 함께 출전하였던 조민수와 함께 그 유명한 위화도 회군을 단행하여 구데타를 일으키고 말았지요 이 소식을 접한 최영은 도성에 몇 없는 병사를 추려서 반격에 나섰는데 그러나 마지막 한 명까지 닥닥 긁어 모두 요동 공략군으로 출진시킨 상황이더라 개경엔 병사가 변변치 않았고 주어진 시간도 너무 짧아서 이성계가 이끌던 원정군인 반란군의 회군 속도가 어마어마하여 최영과 우왕이 대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격문을 지속적으로 보내며 회유를 시도하는 편 어떻게든 병력을 확보해 보려고 애를 썼는데 백전노장 최영은 7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조민수의 부대를 패퇴시키는 등 최후의 활약을 펼쳤으나 얼마 되지 않는 병력으로 수만 명의 군세를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죠 그럼에도 최형은 끝까지 저항했고 이유는 어떻게든 버티며 이성계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퍼지면 왜구를 막느라 각지에 남아 있던 방어 병력들이 개경으로 직결할 테고 그러면 이후에 어쨌든 반란군인 이성계로서는 불리해 지지요 이성계가 강행군을 하며 빠르게 회군한 것도 이런 점을 조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머리 수에서 밀려 중과부족으로 패하며 반군이 개경에 몰리게 되어 최영은 체포되고 말지요 그 후 무장 이성계에 의해 고봉현의 유배되었고 그 뒤 다시 합포로 옮겨졌으며 창왕 즉위 직후 개경으로 압송되어 또 한번 순군옥에서 참혹한 신문을 받고 향년 73세의 나이에 참수형에 처해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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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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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체류할수 있는 정치적난민이 있다고 하던데 이 정치적난민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난민이란 인종 종교 정치적 위협을 받아 생명의 위험에 처할 두려움으로 인해 국경을 넘어 피난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법적인 개념으로서 난민은 국제법상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강제소환 금지 원칙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또한 난민들은 1951년 UN 난민 협약에 따라 교육 고용 의료 이동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는 2080만 명의 난민이 있다고 말합니다.국내 실향민은 난민과 비슷한 이유로 피난을 선택했지만 국경을 넘지 않고 자국 내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입니다. 국내 실향민은 국제법상 난민과 같은 권리를 부여받지는 못하기 때문에 보호에 가장 취약합니다.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그들의 국가 내에서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기도 합니다. 전 세계에는 5,080만 명의 국내 실향민이 있다고 합니다.우리는 난민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하지만 오늘 세계는 훨씬 더 많은 국내 실향민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비호신청자는 망명 신청자로도 불리며 국경을 넘어 피난하여 국제적인 보호를 요구하지만 난민에 대한 자격이 확실히 결정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모든 비호 신청자가 난민주의를 부여받는 것은 아니며 신청국의 평가에 따라 결정이 됩니다. 난민지위를 얻지 못하는 경우 본국으로 돌아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전 세계는 440만 명의 비호 신청자가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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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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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납부하는것중 과태료와 벌금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벌금은 재산형에 속하는 형사처벌이며 전과 기록에 남고 벌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1일 이상 3년 이하의 기간 동안 노역장에 위치하여 작업에 복무해야 합니다 과태료는 도로 위에 있는 무인 카메라 또는 단속 장비를 통해 단속에 적발되면 부과되는 것입니다 벌금은 법을 어긴 경우에 적용되는 형벌이며 법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회 규범인데요 법을 어기면 그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법을 어기면 감옥에 가는 징역이라는 벌을 받을 수도 있고 잘못해서에 대해 일정 금액을내는 긍정적인 벌을 받을 수도 있는데요 벌금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금전적인 형벌이기 때문에 벌금형은 과태료나 과징금과는 다르게 전과기록이 남게 됩니다 또 벌금과 비슷하게 법을 어겼을 경우 돈을 얘기하는 재산 형에는 벌금 말고도 과료와 몰수가 있는데요 과료는 주로 경범죄처럼 과중하지 않은 범죄에 적용되며 2,000원부터 5만 원까지로 그 금액이 적고 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과태료와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위반에 대한 형벌로 차이가 있습니다 몰수는 재산권을 일방적으로 국가가 가져오는 것으로 몰수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일부 또는 전체를 몰수할 수 있습니다 과태료 역시 법을 어기는 경우 내려지는 금전적인 벌입니다 하지만 벌금과는 다르게 형벌적인 성격을 띠지 않기 때문에 전과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차이는 있는데요 과태료는 일반적으로 위반 행위에 대해서 행정적으로 제재하고 질서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량을 운전하시는 분들께서는 과태료와 비슷하게 범칙금을 내라는 통보를 받으신 분들도 계실 텐데요 이는 주로 모두 경범죄나 경미한 도로 교통법 위반 등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범죄에 대한 제재로 차이점은 운전자를 특정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구분이 되며 무인 단속기 등에 불법 정차나 속도위반이 적발되면 운전자가 누군지 정확히 인적사항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량 소유주에게 위반에 대한 과태료를 통지하는데 위반 행위를 하여 직접 경찰에게 붙잡 혀 인적사항 조회가 들어가면 위반자를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에 운전자에게 직접 범칙금이 부과됩니다 범칙금은 개인 기록에 남고 벌점도 쌓일 수 있으며이는 보험료 인상 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경우는 과태료가 범칙금과 혼동될 만한 경우를 말씀드린 것이고 과태료는 경미한 범죄사항 말고도 근로 기준법 위반 같은 중대한 법 위반의 경우에도 수백 수천만원 단위로 부과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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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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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건적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 이성계는 무엇을 했나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359년의 1차 침공은 모거경이 4만여 명의 병력으로 침공했다가 70여 일만의 대부분의 영역을 잃은 채 압록강을 건너 패퇴하는 것으로 끝이 났고 2차 침공은 반성 사류 관선생 주원수가 이끄는 20만여 명을 이끌고 침공하여 개경을 함락시키는 등 위력을 발휘했으나 안우 김득배 이방실 등의 활약으로 3개월 만에 10만여명이 죽고 10만여 명은 다시 압록강을 건너 도주하는 것으로 끝났으며 이 과정 중에 고려에서는 김용의 난이 일어나 공민왕이 암살당할 뻔한 위기도 겪기도 했으며 이성계 등은 신흥무인 세력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당시 이성계는 장군이 아니었기에 정세운과 안우와 이방실 김득배 수하의 장수로 함께 전쟁에 참여하여 전쟁후에 공신책봉을 받아 무군들의 힘이 기성세력인 권문세족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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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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