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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프랭클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빅토르 프랭클은 유태인 정신과 의사였는데, 그의 부모와 형제들중 여동생만 제외하고는 전부 수용소에서 죽거나 가스실로 보내어져 몰살당하게되었고, 본인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에 쳐해져 있었습니다.작은 감방에 홀로 발가벗겨진 채로 있을때 자신이 뒤에 나치들도 빼앗아 갈수 없는' 인간이 가진 가장 마지막 자유'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각하게 되었고, 나치는 그의 육체와 주변 환경을 통제할수는 있지만 플랭클의 자의식 만은 통제 할수 없다는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즉, 수용소에서의 모든 일들에서 영향을 받고 안 받고의 여부는 자기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것을 알게 된것입니다.플랭클은 가장 치욕적인 상황에서 자아의식이라는 천부능력을 사용하여 인간의 본성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인 '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냈고, 그에 따라 행동하므로써 그 지옥과 같은 상황에서 정신적으로 벗어 날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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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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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의 등장 배경은 어떠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시작될 무렵, 진보 성향의 의사 조제프 이냐스 기요탱은 프랑스 처형 제도의 철저한 개혁을 제안했습니다. 계몽사상의 인도주의와 합리주의에 영감을 받은 기요탱의 제안 중에는 공포스럽고 지저분한 전차 바퀴 사형법이나 교수형을 대신할 만한 단순한 처형 방법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기요탱의 기계장치는 고통은 감소시키는 동시에 사형을 보다 민주화시키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참수형은 전통적으로 귀족 계승에 행해지는 처형법이었지만 효율적으로 목을 벨 수 있는 기계는 이 특권을 모든 계급으로 확장시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분명 단두대라 하면 사람을 더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해서 발명되었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단두대는 역설적으로 사형수의 인권과 평등을 위해서 발명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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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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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앞 성은 언제부터 사용을 했던것일까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고려시대 이전에는 성씨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삼국사기 등에 따르면 고구려 건국 시조인 주몽이 이미 고씨라는 성을 썼고, 백제도 시조인 온조가 부여 계통에서 나왔기 때문에 부여씨로 불렸죠. 신라도 3성의 전설이 전해옵니다. 즉 성씨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고, 지배층등 높은 사람들만 쓰여졌던 개념이 바로 성씨라는 것입니다.그런데 통일신라시대 이후 이름앞에 성을 쓰는 관행은 고위 관료층이나 지방 토호 등으로 좀더 확산돼 간 것으로 보입니다.고려 태조 왕건처럼 개국 공신과 지방 토호들에게 사성이라는 특혜를 베풀면서 왕조의 안정을 꾀한 왕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또한 이때부터 흑치, 을지 같은 우리 고유의 성씨들이 사라지면서 최, 이, 홍, 배, 신 등 중국성 씨들이 대거 유입돼 정착하기 시작합니다.우리나라의 성씨와 족보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시점은 고려문종때 문종9년에 "성을 붙이지 않은 사람은 과거에 급제할 수 없다" 는 법령을 공표하면서 관료사회 전반으로 성씨가 확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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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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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는 왜 국가명을 튀르키예로 바꾼것일까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오스만 투르크는 1923년에 성립된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인 케말 파샤에 의해 국가의 이름을 '투르크'에 서 '터키'로 변경하였습니다. 터키 공화국의 설립자들은 '터키'라는 용어를 국호로 선택하여, 국가의 이름과 주민들의 정체성을 더욱 명확하게 나타내기로 결정하였습니다.사실, 터키라는 이름을 사용했을 때부터 튀르키예에 서 정한 정식 스펠링은 튀르키예(Turkiye)였습니다. 튀르키예는 터키인의 땅을 의미합니다. 나라를 뜻하는 가장 적합한 용어였습니다.이전에 사용했단 터키(Turkey)는 그저 튀르키예를 영어식으로 적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터키(Turkey)의 영어 뜻은 칠면조로 영미권에서는 겁쟁이를 비유하는 용어로 사용합니다. 튀르키예 국민들 입장에서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멋대로 영어식으로 적어놓고 이상한 의미로 들리게끔 만든 것이었죠. 이에 튀르키예에서는 2022년부터 자국의 영어명칭을 Turkey에서 Turkiye로 변경하여 사용했습니다. 그리 고 2022년 5월 31일, 국호의 영어표기를 정정해 줄 것 을 UN에 정식으로 요청했습니다. 22년 6월 2일,이 요청이 승인되었고 모든 영어식 명칭이 터키에서 튀르키 뀌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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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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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조는 왜 최악의 임금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임진왜란때 나라를 버리고 도망간것,광해군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열폭한 것,이순신을 간신배 말만 믿고 직위해제 해서 일반 병사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게 한 것,임진왜란 전 율곡이이의 충언을 무시한 것!임진왜란 전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거다 라는 말만 믿고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은 것 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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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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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왜 사람들을 제물로 바쳤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아즈텍 제국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인신공양은 종교적으로는 황제의 권위가 막강하여 사람을 살게도 죽게도 할 수 있는 존재임을 드러낼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단백질 섭취에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잉카제국에는 라마,기니아피그 같은 대형 가축들을 기르면서 식용할 단백질이 있었지만,아즈텍제국은 토끼, 개, 칠면조 같은 작은 동물들만 있어 단백질을 섭취하기에 부족한 환경이였습니다. 물론 아즈텍인들도 사람이기에 배고프다고 자기들끼리 때려죽여 잡아먹는 게 아니라 주로 반역자들, 다른 부족들과의 전쟁을 통해 생긴 포로들을 인신공양으로써 제단에서 그들의 심장을 도려내고 몸뚱아리는 아래로 던져 사람들이 뜯어먹게 했죠. 그러다보니 인신공양 대상들은 가축처럼 잘 먹여서 포동포동 살찌게 하는 경우가 많았고 황제는 이들을 하사함으로서 자신은 관대한 군주임을 드러내고 자신한테 개기면 저렇게 심장을 도려낼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고기에 굶주린 아즈텍인들을 달래는 용도로 쓴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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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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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신분제도는 어떻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고려시대의 신분은 귀족, 중류층, 양인, 천민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신분에 따라 입는 옷, 사는 집 등이 달랐는데 귀족은 왕족을 비롯한 고위 관리로 높은 벼슬과 많은 토지를 가지고 고려의 지배층을 이루었습니다.중류층은 궁궐의 실무를 담당하는 관리나 지방행정을 도와주는 향리, 하급 장교들이 있었습니다.양인은 주로 농민으로 농사를 짓거나 물건을 팔고 살았으며, 그리고 세금을 내고 나라에 큰 일에 동원되었습니다.천민은 가장 낮은 계층이고 노비, 광대, 뱃사공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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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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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이 있던데 사례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역사 반복의 사례는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습니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두 전쟁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강대국들 사이의 경쟁과 불신이 격화된 결과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원인과 전개 양상의 유사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또한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경제 호황과 불황의 주기적 반복도 하나의 예입니다. 1929년의 대공황과 2008년의 금융위기는 여러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투기와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이라는 공통된 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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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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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할로윈데이 문화가 바뀌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맞습니다. 예전처럼 공식적으로 크게 하지는 않고 소규모로 파티룸 잡아서 하는 경우가 대다수 일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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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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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역사라는 걸 기록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역사를 알아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역사 기록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반성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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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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