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제국이 막대한 영토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뭔가요?
안녕하세요. 로마제국이 당시에 강력한 제국으로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는 강력한 군사혁 / 타문화에 대한 유화정책 / 유연한 정치 체계 / 도로 교통망 등을 볼 수 있습니다.우선 [로마 군단]으로 표현되는 강력한 군사력이 당시 제국 확장에 큰 몫을 하였습니다. 중장보병 중심의 강력한 군사력은 당시 주변 국들을 점령하는데 많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이를 통해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 / 한니발과의 전투에서 승리 등 굵직한 전투에서 승리하여 영토를 확장시킬 수 있었습니다.또한 정복지의 사람들에 대해서 노예화 한 곳도 있으나, 일부 시민권과 자치권을 보장하고 그 곳에 수로/극장 등 인프라를 제공함으로써 타 문화와 융화하기도 하였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복민을 로마인으로 만들어 내는것에 성공하여 반란을 최소화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점령한 지방까지 중앙집권의 힘이 끼칠 수 있게 정치 권력을 분산하기도 하였고, 이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총독을 파견함으로써 효율적으로 점령지를 통치하기도 하였습니다. 점령지는 로마법을 토대로 통치함으로써 단순 이민족의 점령지가 아닌 로마의 영토로써 자연스럽게 편입시켰습니다.마지막으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에서 알 수 있는 전국으로 이어지는 도로망을 연결함으로써 군사적/정치적으로조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근간을 만들고, 그들을 로마의 식민으로 만드는것에 성공하여 세계적인 제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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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은 천재 전략가인가요 실패한 정치가인가요?
안녕하세요.제갈량에 대한 분석은 사실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서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삼국지를 알린 연의의 메인 주인공이 유비였기 때문에, 제갈량에 대해서도 더욱 뛰어난 사람으로 기록하고 평가하기도 하였습니다.전투에서의 기록으로 보았을때는 상당히 능력이 높은 전략가이고 지략가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말씀해주신 것 처럼 많이 실패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인물의 배치나 내정의 부분에서는 치명적인 실수도 많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능력이 있지만 그것도보다도 더 고평가된 인물"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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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무과시험은 창술과 검술이 나눠져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무과는 이론/실기를 주로 보았습니다. 이론은 병서로 잘 알려져 있던 [육도],[삼략],[손자병법],[오자병법]과 같은 병법서에 대한 문제를 출제하였다고 합니다.문의주신 부부은 실기과목으로, 무예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주요 과목은 기창(말을 타고 쓰는 창술), 보장(걸어서 쓰는 창술), 편전(단거리 사격), 대궁(장거리 사격), 기마술(마상 무예 능력)이었으며 주요 과목에 검술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실제 전쟁과 전투 시 장병기 위주로 사용을 많이 하기 때문에 주요 과목에 검술을 포함하지 않았고, 장병기가 무너진 최후의 상황에서 검술을 쓴다고 생각하여 보조적인 무예로 보았습니다.정조 시대에 만들어진 [무예도보통지]에서는 검술 무예도 기록되어 있으며 정조 시대 이후에는 무예도보통지를 합격의 기준으로 보았다고 하니 좀 더 중요도가 올라가긴 하였지만, 무과에서 주로 보았던 과목은 창술과 활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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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검은 언제부터 만들었던 것인가요?
안녕하세요.사인검은 "사악을 물리치는 검"으로 주술적인 의미를 담은 의례용 도검입니다. 최초의 제작 기록은 1398년으로, 태조 7년에 조선 왕실 전승을 통해여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사인은 12간지 중 양기가 최고조에 달하는 시간인 범인연, 범인월, 범인일, 범인시가 모두 겹치는 시점으로, 이 시기에 만든 검이 신성한 힘을 지닌다고 여겨졌다 합니다. 주로 관찰사, 통제사, 장군과 같은 고위직을 임명할 때 하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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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군대의 수준은 전세계적으로 비교했을 때 어떤 수준 인가요?
안녕하세요.군대의 강함을 평가하는 순위로는 GFP(Global Firepower)에서 발표하는 순위와 MPR(Military Power Rankings)이 있습니다. 이 수치로 보았을 때 이스라엘은 GFP 순위는 세계 15위, MPR은 세계 14위로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같은 예비군을 보유한 국가로, 현역+예비군 하면 약 60만명의 군인을 동원할 수 있고, 미국에계서 지원받는 고성능 무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F-35 전투기, 메르카바 전차 등) 또한 미국의 지원을 직접적으로 받는 국가이기도 하여, 만약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인다면 미국과도 같이 전쟁을 치루어야 하기에 쉽게 다른 나라들이 접근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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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난파선을 발견한적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고려시대 난파선 인양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연구하고 있는 분야이긴 합니다. 다만 현재는 국가 주도로 인양을 하고 있진 않고 개인이 연구하여 찾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예전 1980년대 초반에 완도에서 고려시대 상선을 인양한 적이 있으며, 당시에는 문화재 당국에서 직접 조사하여 발굴을 진행하였습니다. 당시 청자와 도자기 등 3만점 가량의 유물을 회수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22년-23년에도 해남에서 곡물 운반선으로 추청되는 선박을 인양하였으며, 당시의 도자기 등 유물을 회수하였습니다. 당시 발굴할때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직접 진행하였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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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승리했다면 당시 중국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안녕하세요.역사에 만약에는 없지만, 만약 조조가 적변대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면 오나라는 즉시 멸망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적벽에서의 전투 자체가 두 나라의 총력전이기도 하면서, 장강을 건넌 조조의 군대를 오나라가 쉽게 막아내지는 못하였을 것입니다.삼국지의 균형 자체가 위vs오,촉 연합으로 유지를 하고 있던 만큼, 오나라의 멸망은 이후 촉나라까지도 영향을 끼쳤을거라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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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왕의 율령 반포는 신라의 중앙집권화에 어떤 의미를 가졌나요?
안녕하세요.율령은 형벌법+행정법으로, 나라를 통치하는 모든 포괄 규범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율령반포 이전에는 보통 부족 전통적인 씨족 중심의 연맹 성격으로, 왕의 중심의 통치가 아닌 연맹 각각의 부족법으로 통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율령이 반포됨으로써 하나의 나라에서 하나의 법으로 통치를 하게 되고, 이는 율령을 제도화하여 반포한 왕 중심의 통치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법흥왕의 율령반포는 이와 같은 의미로 통일된 법체계를 수립함으로써 중앙 중심의 통치 체제를 수립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특히 신라의 신분제인 골품제를 정착시킴으로써 신분적인 질서를 정립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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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에 외계인의 대한기록이 있다고하는데 정말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성종실록에서 외계인에 대한 기록, 즉 단피몽두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가공된 이야기로 보이며,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입니다.다만 광해군일기에서는 UFO와 비슷한 빛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진짜 UFO에 대한 이야기인지는 확실히 알긴 어렵습니다.광해군 일기 내용“간성군(杆城郡)에서 8월 25일 사시(09~11시) 푸른 하늘에 쨍쨍하게 태양이 비치었고 사방에는 한 점의 구름도 없었는데, 우레 소리가 나면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해 갈 즈음에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 보니, 푸른 하늘에서 연기처럼 생긴 것이 두 곳에서 조금씩 나왔습니다. 형체는 햇무리와 같았고 움직이다가 한참 만에 멈추었으며, 우레 소리가 마치 북소리처럼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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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오늘날과 같은 폭염은 없었나요?
안녕하세요.우리나라 과거 실록 기록에서 폭염에 대한 기록은 따로 없습니다. 실록에 기록하는 재난은 홍수, 가뭄, 병충해, 흉작과 같은 기상 재해에 대한 기록만 남아있습니다. 이는 기온을 정량적으로 측정하거나 기록하는 방법 자체가 없었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덥다는건 알지만, 평균보다 얼마나 더운지를 기록할 수 없기 때문)다만 정조나 순조시대의 기록에서 "여름에 환자 수가 급증한다"는 문구가 나오거나, 조선 후기 민간의 기록에서 "무더위에 쓰러졌다", "고열로 혼절했다" 등의 기록만 찾아볼 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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