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프로필
프로필
답변
잉크
답변 내역
전체
학문
한국의 외교적 자세는 어떤 방향이 옳은 걸까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말씀해주신 것 처럼 한국의 외교적 위치는 상당히 애매하긴 합니다. 미국의 우방이면서 바로 옆의 중국의 눈치도 봐야 하니까요.어느 방향이 무조건 옮다고 하긴 어렵지만, 미국과의 관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지하면서 중국과 적이 되지 않는, 지금과 같은 노선이 가장 피해가 적은 노선이긴 한 것 같습니다. 우리의 무기라 할 수 있는걸 키워야 하는데, 현재 산업 분야에서는 중국에 많은 부분을 빼앗기기도 했구요. 그래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문화산업에 더 투자하고도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통하는 무기 중 하나니까요.
학문 /
역사
25.10.11
0
0
전 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국가 지도자는 누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한 국가의 지도자가 모든 나라에서 칭송받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자국에선 영웅일진 몰라도 주변국의 입장에선 침략자이거나 배신자일수도 있으니까요.전 세계적으로 좋은 평을 받는 사람 중 하나는 3차 십자군 전쟁을 막아낸 살라딘(살라흐 앗딘 유수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랍문화권에서는 물론이고 당시 기독교 국가들도 진정해 기사도라고 칭송했다고도 하니까요.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을 안보셨으면 한번 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학문 /
역사
25.10.11
0
0
촉나라 장수 황충의 죽음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황충은 오호대장군 중 하나로, 전투의 부상으로 인하여 사망하게 됩니다. 오나라와의 전쟁인 이릉대전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관우와 장비의 사후 아들들인 관흥과 장포가 장성하여 공을 세우자, 유비가 이들을 칭찬하게 됩니다. 이때 "내 장수들은 이미 죽거나 늙어 쓸모없어 졌는데, 두 조카가 공을 세우는 구나"라는 구절이 황충의 자존심을 건들게 됩니다.이에 황충은 공을 세우기 위해 무리하게 출진하게 되고, 실제로 공도 세우긴 하나 복병에 의해 화살을 맞고 중상을 입게 됩니다. 이후 돌아오긴 하였으나 병세가 심해져 죽게됩니다. 유비가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였고, 황충은 자신은 좋은 주인을 만나 천수를 누려 미련이 없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학문 /
역사
25.10.11
5.0
1명 평가
0
0
하나의 추억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잇는것도 성향인가요?
안녕하세요. 역사에 질문할 내용은 아닌 것 같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기억 자체가 마음 깊게 박혔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나의 추억이라는게 당시의 감정이 그만큼 깊게 저장이 되어서 지금까지도 계속 생각이 나지 않을까요?모든 나라에는 그 나라를 만들어 낸 역사적인 사건들이 있듯이, 나라는 사람에게 뇌리에 박힌 기억이나 추억은 지금의 나를 만든 하나의 큰 사건이지 않을까 합니다.
학문 /
역사
25.10.11
0
0
에누마 엘리시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에누마 엘리시는 고대 바빌론의 신화로, 기원전 12세기 경에 정리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내용은 최초의 혼돈 티아마트와 신들의 싸움으로 젊은 신인 마두루크가 물리침으로써 혼돈을 정리하고 질서를 성립한다는 내용입니다.말씀하신 길가메시 서사시도 비슷한 서사 (혼돈의 길가메시가 신들과 만나면서 질서를 정립)한다는 내용에서 유사성은 있으나 같은 바빌론의 신화로 의미를 공유한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학문 /
역사
25.09.13
5.0
1명 평가
0
0
중세 기사들의 갑옷 무게는 얼마나 됐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중세시대 갑옷은 종류에 따라 다르긴 했지만, 쇠사슬 갑옷(체인메일)의 경우는 10~15kg, 판금갑옷(풀플레이트메일)은 20~30kg정도의 무게를 하였습니다. 흔히 알고 있는 판금갑옷은 무게로만 따지면 무겁긴 하였지만 정교한 세공이 들어있어 무게가 활동하기 편하게 분산되어 있었고, 또 활동하기 편하게 관절 부위를 파츠별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알려져 있는 것처럼 넘어지면 일어나지 못한다거나, 말에서 내려오면 제대로 걷지 못한다는건 사실이 아닙니다.다만 그래도 무게는 꽤 무거운 편이라 물에 빠지면 빠져 죽는 경우는 많아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프리드리히 1세 대왕이 물에 빠져서 죽었습니다.)
학문 /
역사
25.09.13
0
0
과거에 사약을 먹고 안죽는 사람도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사약은 사극에서 처럼 먹자마자 바로 죽는 약은 아니었고, 약효가 몸에 들면서 심장마비나 호흡곤란으로 죽음에 이르는 약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약효에 따라서 바로 죽지 않거나, 살아남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럴때는 집행관이 직접 목을 졸라서 죽였다고 합니다.대표적으로는 사림의 거두 중 한명이었던 송시열은 사약을 두잔 먹고 죽지 않았고, 당시 송시열은 워낙에 지위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집행관이 차마 목을 조를 수 없어 제발 죽어달라고 사정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몇잔 더 먹고서야 죽었다고 합니다.) 또한 임형수라는 사람은 사약을 16잔 먹고도 죽지 않아, 결국에 목을 졸라 죽였다고 합니다.이렇듯 사약을 먹고 죽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 이런 사람들은 목을 졸라 죽게 하였습니다. 즉 공식적으로 사약을 먹고 생존한 사람은 없습니다.
학문 /
역사
25.09.13
5.0
1명 평가
0
0
사약의 '사' 자가 한자로 죽을 사자가 아니라고 하던데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사약은 흔히 사극에서 보는 것 처럼 먹자마자 윽! 하고 죽는 약이 아니었습니다. 사약은 먹고서 방 안에서 가만히 있으면, 독이 천천히 퍼져 죽음에 이르는 약이었습니다. 즉 사약은 잔인하게 벌을 주는 형벌이 아닌 목을 자르거나 능지처참하여 몸을 훼손시키지 않는, 은혜로운 죽음을 주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약의 사는 은혜 사를 사용하는 것이고, 사약을 받아 죽는 사람들은 대부분 죄를 짓긴 하였으나 나라에 공헌을 한 이력도 있어 왕이 친히 내려주는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학문 /
역사
25.09.13
5.0
1명 평가
0
0
술을 마실때 짠을 하는건 언제부터 시작된건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술을 마실때 짠을 하는 행위는 동/서양 모두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으나 몇가지만 꼽아보면1) 예전 고대시대에 독살하는 경우가 많아, 서로 짠을 하면서 술이 섞이는걸 눈으로 봄으로써 "나는 너를 해치지 않는다." 또는 동맹의 의식으로 하였다는 설이 있습니다.2) 같은 위치에서 술을 짠 함으로써 같은 연대에 있다, 공동체 속에 같이 있다는 의식적인 표현3) 신과 동료들에게 존중을 한다는 의미로, 서로 술잔을 부딪히면서 신께 감사를 표한다는 주술적인 행위위와 같은 설들이 가장 유력합니다.동/서양 모두 나타나는 이유는 술을 마시는 문화 자체가 전세계에 퍼져있기도 하고, 술자리 자체가 서로의 연대를 위하여 만들어지는 자리가 많기 때문에 위와 같은 문화들이 퍼지면서 자리잡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학문 /
역사
25.09.13
0
0
일제 강점기 시절 경성이라는 이름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서울은 조선시대에 부르는 명칭은 한양 또는 한성이었습니다. 그 중 한성에 '성'은 성곽을 뜻하는 단어였는데, 그래서 조선 후기에는 한양을 경도 또는 경성으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경도는 뜻 그대로 수도, 경성은 수도의 성곽)이러한 명칭이 일제강점기에 들어오면서 일본식 행정 표현으로 굳어졌고, 특히 한양은 나라의 수도를 뜻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일본식 행정 표현으로 경성으로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경성부라는 행정 명칭으로 통일하여 경성이 됨.)추가로 서울이라는 표현은 순 우리말이기 때문에 민간에서만 사용하였고, 공식적으로 씌여진 시기는 해방 이후에 서울특별자유시, 그리고 이후 서울특별시로 불리면서 공식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학문 /
역사
25.09.13
5.0
1명 평가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