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좋아하는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진로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역사학과 졸업 후 역사를 활용한 직업에는 말씀해 주신 것 처럼 다양하게 있습니다. 말씀해주신 것 외에 주변에서 역사와 관련된 직업을 가진 예시를 우선 말씀드리겠습니다.첫번째로 고고학 발굴 학계에서 일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교수와 비슷할 수도 있는데, 발굴을 주로 하는 학회에서 일하는 것 입니다. 학회 안에서 연구하면서 교수가 되기도 하고, 아니면 발굴만 전문적으로 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형 토목공사를 하면 법적으로 발굴 조사를 무조건 하게 되어 있어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연구직인데도 불구하고 재정적으로 꽤 괜찮게 일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그리고 외국인들 대상으로 가이드를 진해하는 분도 있습니다. 주로 서울 경복궁-종로쪽 투어를 진행하시는데 외국어를 배워야 하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역사를 외국에 알릴 수 있다는 것으로 많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온라인에서 이런 투어들은 예약하기 쉬어서, 궁금하시다면 한번 신청해서 같이 다녀보는 것도 괜찮으실 것 같습니다.역사학과 졸업생으로 역사를 진로로 생각하신다기에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교육계 기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다만 역사를 완전히 활용해서 일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학예사나 문화재 연구원을 희망하신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무조건 대학원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대학원은 결국 본인이 연구를 해야 되는 분야가 있어야 하기에 이끌어주실 교수님이 있는 대학교를 잘 선정하는 것도 꽤 중요합니다. (아직까지 역사학계는 학연이 꽤 있습니다.) 고등학교때 학업 외에 한국 유네스코와 같은 협회에서 주최하는 대외활동을 참여하는 것도 좋습니다. 경험적으로도 꽤나 유익했고 스펙으로도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공무원을 생각하신다면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을 보는 것도 좋습니다. 공무원 시험 제도가 변화하여, 한번 따두면 꽤 오래까지 사용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마지막으로 역사와 관련된 직업은 많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역사에 대한 열정을 계속 이어가는게 제일 중요할 것 같습니다. 특히 역사관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하는 역사가 많습니다.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자신의 열정을 꾸준하게 이어간다면 분명 훌륭한 역사학도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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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은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알려져 있는 것은 인천 강화에 있는 전등사 입니다. 381년 고구려 소수림왕대에 건립되었다고 알려진 전등사는 이름이 계속 변경되다가, 고려 충렬왕 시대에 현재의 이름인 전등사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조선왕조실록의 유실을 막기 위하여 지방의 서고에 나누어서 보관을 하였던 정족산 서고도 전등사 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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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와 보수의 차이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보수와 진보를 부를 때 우파/좌파로 부르는 것의 시작은 프랑스 혁명 당시 국민공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최초의 국민 공회에서는 왕당파가 오른쪽 / 공화파가 왼쪽에 앉았었고, 왕당파가 축출된 이후에는 온건 공화파가 오른쪽 / 급진 공화파가 왼쪽에 앉게 되면서 우파/좌파로 불리었습니다. 아이러니한건 당시 좌파가 현재의 자유주의, 공화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우파는 현재에는 보수로 많이 부르지만, 원래의 의미로 본다면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는 쪽"이 우파로 보는게 맞습니다. 같은 의미로 좌파도 진보로 많이 부르지만, 본래의 의미는 "새로운 체제를 지향하는 쪽"이 좌파로 보아야 하구요. 역사적인 정의로 본다면 위 처럼 보는게 맞습니다.현재의 의미는 사실 많이 변질되어 우파=보수, 시장경제체제, 계층과 권위를 옹호하는 성향으로 보며, 좌파=진보, 평등주의, 사회주의적 성향으로 많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사실 정치적으로 봤을 때, 기존의 보수와 진보의 개념에서 많이 변질된 것들이 많아 경계가 애매모호 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로 본다면 우파=친미, 기업위주, 북한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고 좌파=친중, 서민위주, 친북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뭐가 맞다라고 하기엔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복잡한 관계이기에 성향적인 차이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극우나 극좌는 위에서 말한 성향이 워낙 강해서, 전혀 타협이 되지 않으면 극우나 극좌로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제 개인적으로는 중국보단 미국이 외교적으로 좀 더 친해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상황에 따라서는 중국도 무시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는 보수적인 성향으로 볼 수 있구요. 그런데 극우는 무조건 미국과만 친하게 지내야 하고, 중국은 우리의 적일 뿐이다 라고 이야기 하는게 극우입니다. 극좌도 반대의 경우로 같은 것 이구요. 타협에 대한 여지가 있느냐 없느냐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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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역사가 달라졌다면 일제강점기는 없었을까여?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역사에 만약은 없기에, 이렇다 라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당시 조선의 상황이나 외세의 침략 시기와 같이 생각했을 때 꼭 일본이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들의 위협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상대적인 국력이 많이 약한 상황이었고, 다른 나라들도 조선 자체에 견제를 하기 보단 경쟁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조선에서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쉽지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국제사회에서 당연한 친구는 없기에, 어떻게 해결에 나가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외교적으로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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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아시는 분들 답글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담배의 시작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7세기경 마야 문명의 벽화 중에서, 제사장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그 이전부터(길게는 기원전부터) 무언가를 태워서 연기를 마시는 흡연 문화가 이어져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기호품이 아니라 제사를 위한 일종의 종교 의식의 형태가 더 강했습니다.서양문화건에 담배가 알려진건 콜럼버스의 신대륙 탐사 이후이고, 처음에는 잎담배 형식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프랑스인 니코에 의하여 서구권에서 담배가 재배되기 시작하였고, 반세기 이후에 현재 많이 알려진 권렬형 담배와 파이프 담배등이 나왔습니다. (참고로 니코틴의 어원이 이 니코에서 왔다고 합니다.) 담배의 정신안정 효능으로 처음에는 약재로 알려졌다가 점차 민간에게 퍼지게 되었고, 한때는 긴장 완화로 성적 흥분을 유발한다 하여 마녀사냥의 도구로도 사용되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여성들에게는 금지되는 시기도 있었는데, 이로 인해 남녀 평등의 상징으로도 여겨지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군대에 담배가 보급된 것도 잘 알려진 세계 1,2차 대전때 군인들의 긴장 완화를 위하여 보급된게 주요했었습니다.우리나라에 담배가 알려진건 임진왜란 이후로, 이때 고추나 호박과 함께 같이 서구권에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라고 해봐야 500년도 안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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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능력검정 공부 어떻게 하시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다른 시대에 비해서 조선시대는 세세하게 봐야 하는 부분도 있고, 근대는 특히 사건과 사건 사이의 기간이 짧아 암기가 필요한 부분도 꽤 있습니다.전체적으로 맥락을 이해하고 싶으시면 개인적으로는 최태성 선생님 강의가 이야기 형식으로 잘 말해주셔서 기억에 잘 남는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벌거벗은 한국사 같은걸 보시는 것도 큰 사건 위주로 아실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조선시대랑 근대사는 위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암기도 어느 정도 필요한 시기이기에, 연표를 같이 보시면서 공부하시는게 도움이 더 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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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있는 그리스 청동 투구는 어떻게 한국에 있게 됐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문의주신 그리스 청동투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것을 문의 주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그리스 청동투구는 우리나라 마라톤 영웅인 고 손기정 선수가 기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이 청동투구는 고대 코린트 지역에서 제작한 것으로, 고대 올림픽에서 신에게 바치기 위해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우승자에게 청동투구를 부상으로 주려 하였으나, 올림픽 규정에서 메달 외의 다른 부상은 줄 수 없게 되어 있어 당시 우승자인 손기정 선수에게 바로 전달되진 못하였습니다. 이후 1986년 베를린 올림픽 50주년을 맞이하여 손기정 선수에게 다시 투구가 전달되었고, 손기정 선수는 이 투구는 민족을 위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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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폴란드도 러시아와 사이가 굉장히 안 좋다던데.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러시아와 폴란드의 사이를 이야기 하자면, 폴란드인 입장에서는 단순하게 싫어한다 정도가 아니라 주적으로 생각할 정도입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에 러시아와 크고 작은 대립이 있었는데, 17세기 폴란드의 지배를 받던 동슬라브계 정교회 사람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러시아를 끌어들이게 됩니다. (폴란드는 카톨릭입니다.) 이 전쟁에서 폴란드가 대패하게 되면서 국토의 95%가 초토화되었고, 20세기가 될때까지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입장이 됩니다. 2세기에 또 전쟁에서 패하면서 독일과 러시아에 분할통치를 받기도 하였고, 지속적으로 러시아에게 괴롭힘을 당해온 역사가 있어서 러시아를 극도로 혐오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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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에 대해 여러가지 견해가 있는데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환단고기는 사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위서로 보고 있습니다. 환단고기가 쓰여진 연도 자체가 1900년대 초이고, 당시에 민족주의 사관이 팽배할때라 실제 역사적인 근거와는 다르게 민족의식에 고취된 책들도 많이 쓰여졌습니다. 환단도기가 알려진 것도 1970년대 이유립에 의하여 알려진 것인데, 역사학자가 아닌 종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유립 자체가 민족주의 성향이 너무 강하기도 할 뿐더러, 환단고기가 자신의 스승이 내려준 역사서라 하며 세상에 알린것이라 환단고기 자체가 역사적인 근거가 너무나도 부족합니다.현대 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 자체를 소설 정도의 위서로 보고 있고,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진 않습니다. 21세기 대군부인 드라마에서 "만약 한국이 자주국이라면"으로 시작하는 것 처럼, 고대 한국에 세상을 호령했더라면 이라는 픽션으로 시작된 책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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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 한국이 정전협정에 불참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이승만 정부는 정전에 부정적이긴 하였으나, 정전 협정에 최종 불참하진 않았습니다. 한국군 대표로 최덕신 소장 등 한국의 대표단도 같이 참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인에 한국군이 없는건, 유엔군 소속으로 정전 협장을 참여하였기에 유엔군 대표가 사인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이승만 정부가 정전에 부정적이었으나, 이는 계산된 정치 행보로 해석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승만 정부의 방향 자체가 북진 통일을 강하게 주장하기도 하였고, 미군 포함 유엔군과 함께 한다면 이것이 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미 북한의 공격으로 시작된 6.25 전쟁이기에, 정전 이후에도 군사력이 약한 한국이 불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정전 협정을 참여하지 않으려고 함으로써 결론적으로는 방호조약을 체결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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