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프로필
프로필
답변
잉크
답변 내역
전체
학문
과거 삼국시대에 신분은 어떻게 나누어졌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국시대 신분제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고대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귀족, 평민, 천민의 신분제로 형성되었습니다.고구려는 왕족인 고씨와 5부의 귀족이 지배층을 이루었으며, 관직 진출이나 귀족 회의를 통해 정치력, 많은 토지를 소유했습니다. 평민은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거나 귀족의 토지를 빌려서 경작하였으며, 조세, 공물, 노동력을 제공하였습니다. 천민은 노비로서 귀족의 재산으로 취급되어 매매, 증여, 상속의 대상이 되었습니다.백제: 왕족인 부여씨와 8성의 귀족이 지배층을 이루었으며, 왕권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평민은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노비가 존재했어요.신라는 왕족과 귀족, 평민, 천민과 귀족들 사이의 별도로 골품제가 있었습니다. 골품제는 골 (骨)제와 품 (品)제로 구성되었으며, 왕족은 성골과 진골로 나뉘었습니다. 일반 귀족은 6두품부터 1두품까지로 나뉘었으며, 3두품 이하는 점차 평민 신분이 되었습니다. 천민인 노비가 있었습니다.
학문 /
역사
24.01.16
0
0
대원군은 왜 적장자가 아닌 고종을 보위에 올렸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철종이 사망할 당시 첫째 이재면은 성인이라 조대비의 수렴청정과 흥선군의 권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었습니다.따라서 당시 12세의 미성년자였던 이명복(흥선대원군의 차남)이 성인인 흥친왕보다 조종하기 쉬울 것이라는 흥선대원군의 계략과 조대비의 묵인이 작용한 결과 익종의 양자로 입적되어 왕위를 계승했어요.
학문 /
역사
24.01.16
0
0
우리나라 민속스포츠 씨름의 유래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씨름은 이미 상고시대부터 시작된 운동 경기로, 형성 과정은 알 수 없으나 각종 기록을 통해 역사를 대강 알 수 있습니다. 4세기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는 만주의 고구려 고분 각저총과 5세기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보는 장천 1호 무덤에는 씨름을 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미 고구려 때 씨름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서기에서는 백제 사신이 왜국에 갔을 때 일본 대왕(오오키미)가 연회를 열었고 백제 사신 앞에서 왜인 무술인 둘을 스모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어서 백제에서도 씨름을 했던 것을 유추해 볼 수 볼수 있어요.
학문 /
역사
24.01.16
0
0
배산임수가 풍수지리적으로 왜 좋은걸까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배산임수는 산을 등지고 물을 내려다보는 지형을 말합니다. 배산임수는 일조권이 좋고, 여름에는 시원한 남풍을, 겨울에는 차가운 북풍을 막아주어 생활하기에 쾌적합니다. 또한 농사 잣기 좋은 토지와 딸감을 구하고 외적의 침입에 대비할 수 있어 유리합니다.
학문 /
역사
24.01.16
0
0
예루살렘의 성묘교회는 어떤 의미가 있는 장소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성묘교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안장된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곳에 세워진 성당입니다. 성묘교회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가장 중요한 성지로, 기독교의 발상지이기도 합니다.성묘교회는 4세기에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와 그의 어머니 헬레나의 명령으로 건축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기독교를 박해하고, 성지를 파괴하고, 그 위에 아프로디테와 제우스의 신전을 세웠습니다. 헬레나는 신전을 헐고, 예수님의 무덤과 십자가를 발견했다고 하네요.파괴와 복원이 거듭되어쓰며, 여러 기독교 종파들이 성당의 소유권을 다투었습니다. 현재는 로마 가톨릭교회,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콥트교,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여섯 종파가 성당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학문 /
역사
24.01.16
0
0
세계 역사상 가장 광대한 제국을 정복한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몽골제국, 로마제국 보다 큰 역사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국가는 대영 제국 (British Empire)입니다. 대영 제국은 1920년대에 최대 영토를 달성했으며, 당시 면적은 약 3,550만 km2로 세계 토지 면적의 22.6%에 해당했습니다.대영 제국은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거느렸으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습니다.대영제국의 배경은 해군력과 산업혁명이후 경제력을 바탕으로 가능했습니다.
학문 /
역사
24.01.16
0
0
왜 천주교의 발단은 유럽이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천주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로마카톨릭이라 합니다. 크리스트교는 로마로 전파되었으나 300년 동안 박해를 받다가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공인되면서 로마의 영향력과 더불어 급속도로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모든 사람이 믿는 종교’라는 뜻에서 ‘가톨릭’ (Catholic)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392년 로마의 국교로 되고, 동서로마로 분열되면서 갈등을 빚다 1054년 로마교회인 로마가톨릭과 동장정교회으로 나뉩니다. 로마 카톨릭을 우리나라에서 천주교라 합니다.
학문 /
역사
24.01.16
0
0
우리나라에 이모작의 시작은 언제부터였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모작은 같은 경작지에서 1년에 벼와 보리를 이어 농사짓는 농법입니다.우리나라 이모작의 기원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아마도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인구증가와 더불어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15세기 <농사직설>이나 <금양잡록> 등 중요한 농서에 논의 이모작에 관한 기록이 없으나 17세기 초에 허균이 편찬한 <한정록>의 치농조에 비로소 보리를 논의 이모작으로 재배한다는 기록이 있어 아마도 조선 후기 본격화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학문 /
역사
24.01.16
0
0
우리나라 역사상 신호등은 언제 처음 도입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1940년에 신로등이 설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신호등은 둥근 점등이 아니라 기차역 플랫폼 입구에서 기차의 홈인을 유도하던 날개식 신호기였습니다.오늘날과 같은 둥근 점등의 신호등은 광복 이후 미군이 상륙하면서 등장했습니다. 당시에는 색깔 대신 ‘서세요’, '가세요’라는 글자로 표기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4.01.16
0
0
우리나라 이름 앞에 붙는 성의 역사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국의 성씨(姓氏)는 한국인이 혈족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이름 앞에 붙이는 칭호입니다. 한국의 성씨는 한자 등 중국 문물의 수입과 함께 도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진흥왕순수비 등 금석문의 자료를 보면 신라인들은 이두식 이름을 사용하다가 7세기부터 중국의 한자식 성과 이름을 차용하여 쓰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그런데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우리나라의 사서에 의하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국가의 초기부터 성을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은 국호를 고구려라 했기 때문에 성을 고(高)씨라 하였으며 충신들에게 극(克), 중실(仲室), 소실(小室) 등의 성을 내렸다고 합니다. 백제는 시조 온조溫祖가 부여 계통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부여(扶餘)씨라고 하였고, 신라에서는 박(朴), 석(昔), 김(金) 3성의 전설이 전해옵니다.
학문 /
역사
24.01.16
0
0
1729
1730
1731
1732
1733
1734
1735
1736
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