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들은 추운 겨울에 경복궁 근정전에서 어떻게 업무를 봤나요?
경복궁의 근정전은 정전으로 격식용 건물입니다. 조하, 대례, 사신 접견과 같은 의례 행사에 주로 활용되는 장소입니다. 물론 근정전은 난방이 부족하여 겨울철의 활용은 매우 제한적이었을 것입니다. 대신 근정전 옆의 사정전과 그 부속 건물인 천추전에는 난방이 가능하여 왕과 신하들이 실제로 일상 회의와 정책을 집행하는 장소로 운영되었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중국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공산당에게
물론 중일전쟁이 국공 내전에서 국민당에게 미친 영향도 있었을 것입니다. 국민당군의 주력군은 일본군에 의해 잃거나 손상이 컸습니다. 게다가 일본군의 공세에 국민당은 내륙 깊숙이 충칭으로 후퇴하였습니다. 반면 공산당군은 일본, 국민당과 거리가 있는 산악 지역에서 세력을 넓혔습니다. 하지만 공산당군은 최전선인 화북 지역에서 일본의 주력군과 맞서고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국민당군만 약화되었다고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민당은 정치, 경제 부패로 인민들의 지지를 상실했습니다. 또한 전략적으로 도시, 철도 중심의 점선 전략은 공산당의 면, 지역 전에 밀렸습니다. 즉, 중일전쟁으로 국민당군의 세력 약화도 있지만 국민당 스스로 문제와 민중의 지지를 받는 공산당의 조직력에 밀려 패배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엄흥도는 명을 어기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루어주었는데 세조는 끝까지 그 사실을 몰랐나요?
몰랐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당시 세조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라고 엄명을 내린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엄흥도는 이를 어기고 몰래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찾아 암장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숨어 살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당시 세조가 알았으면 결코 용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에서 드러난 시점은 중종, 숙종 때 공식 기록적으로 등장합니다. 1517년 중종 때 단종 묘를 찾으라는 명을 내려 '노산군묘'로써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숙종 때 엄흥도의 충의와 후손 면역 문제까지 논의하게 됩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유대인들은 왜 예수를 믿지 않는건지 궁금해요.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메시아로서 예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의 예언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 예수는 유대 율법 전통을 깨고 안식일을 지키기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게다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하니 황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교는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매우 강하게 강조하며, 하나님의 아들같은 개념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대교는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역사의 정치적 도구화는 당연할까? 아니면 근절되어야 할까?
역사를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못마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도 역사는 정치적 도구였으며, 정치와 역사를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역사는 국가 정체성, 국민 정체성과 정치 이념을 반영합니다. 하지만 역사를 자기의 입장에서 왜곡, 부정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정치인이나 정권은 친일, 독재를 옹호하며 역사를 재해석하거나 왜곡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올바른 역사 의식을 교육하는 시스템이 중요합니다. 학교, 언론, 학계가 자기 검열과 왜곡을 줄이고 논쟁, 토론, 근거를 제시를 기본으로 삼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석유라는 자원참 생각해보면 불공평합니다ㅎ
과거에 공룡 화석이 썩어서 석유가 되었다는 말이 퍼졌지만 오해입니다.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바다에 사는 플랑크톤, 단세포 생물, 조류 같은 미생물이 죽고 산소가 적은 바닥에 쌓여 수천만 동안 바뀌어 석유, 가스로 된 것이라 봅니다. 공룡이 사체가 직접적으로 석유 제조에 기여하지는 않습니다.그런데, 중동 지역에 석유가 집중된 것은 지형적으로 과거 얕은 바다였다가 산과 육지 생성 과정을 거쳐 바다에 쌓인 유기물 퇴적층이 지하에 파뭍혀 석유, 가스가 형성되기 좋은 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정해지는걸까요?
사람의 운명 가운데 수명은 우선 유전, 건강 요인에 의해 결정됩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자연수명에서 유전적 요소가 50%를 차지한다고 보고되었습니다. 또한 생활과 환경적 요인도 수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그리고 운명을 결정하는 요인 가운데, 종교, 종교 등 신념도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불교는 현생의 선행이 다음 삶을 결정하는다는 윤회 사상이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 먼저 간다는 느낌은 아마도 착한 사람이 빨리 떠나면 충격과 감정이 커서 기억에 오래 남기때문이라 봅니다. 하지만 선악이 수명을 결정하는 조건이라는 설득력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5.0 (1)
응원하기
왜 세계 표준 시간은 그리니치 기준으로 정해졌나요?
그리니치 천문대는 17~18세기에 당시 정밀한 천문, 시간 측정 기관입니다. 그런데, 1847년 영국이 철도 시간 혼란을 줄이기 위해 전국 철도 시간을 그리니치 평균시로 맞추는 표준시 제도를 도입한 것입니다. 이 후 영국 전체가 한 시간 기준을 쓰게 되면서 GMT가 표준화됩니다.그리고 1884년 위성턴에서 열린 자오선 회의에서 그리니치 자오선을 본초 자오선으로 채택한 것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일본같은 경우 왕이 계속 이어졌다던데 그중에서 여왕도 있었을까요?
일본 역사에 여성 덴노도 있었습니다. 고댜, 중세, 근세에 걸쳐 모두 10대에 걸쳐 8명의 여성 덴노가 재위하였습니다. 스이코, 고교쿠(사이메이), 지토, 겐메이(겐쇼), 고켄(쇼토쿠), 17세기에 메이쇼, 18세기에 고사쿠라마치 등입니다. 지금은 없는 이유는 황실전범에서 '황위는 남계 남성에게만'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세종대왕은 언제부터 왕가의 자식들도 관직이나 요직에 앉아서 국정수행을 하도록 하게한건가요?
조선은 본래 왕자,대군, 군 등은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따라서 관직에 진출하는 것도 제한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나라를 잘 운영하려면 왕족도 필요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즉 정치, 행정 능력을 인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왕족들도 핵심 관료로 활용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안평대군은 병조, 도절제사, 조정 보좌 등 중요한 자리에 앉았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