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와 조선간의 종계변무사건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종계변무 사건은 명나라 <대명회전>, <명태조실록>에 조선 태조 이성계의 혈통에 대한 잘못된 기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를 바로잡으려 200년 동안 명나라에 지속적으로 요청하였습니다. 이 사건의 발단은 고려말 이성계의 정적들이 이성계를 이인임의 후손이라 하여 모함으로 명나라에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여 시작되었습니다. 태종부터 선조까지 지속적으로 사신을 파견하여 1589년 기록을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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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더가든은 별명이 여러가지인 걸로 알고있습니다. 예를 들면 킨더가든, 칼든강도가 있는데요. 이는 언어유희 중 어떤 종류로 보아야 하는 걸까요?
카더가든의 별명은 "킨더가든", "칼든강도" 등 음운 유사성으로 생긴 언어유희의 일종입니다. 즉 카더가든(Car, the Garden)'의 발음 구조가 비슷하여 웃자고 만든 것이죠. 카더가든의 이름에서 연관도 없는 단어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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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에서 13세기경에는 북해지역에 북해제국이 성립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이킹, 해적이 통치하는 국가였는데,
북해제국은 1016년부터 1035년까지 바이킹 출신이 크누트 대왕이 통치했던 앵글로-스칸디나비아 제국입니다. 크누트 대왕은 덴마크 스벤 1세의 아들로 1016년 잉글랜드 왕에 오르고, 1018년 덴마크 왕위, 그리고 1028년 노르웨이 왕위를 차지하였습니다. 북해제국은 잉글랜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의 일부 지역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그의 사후 제국은 후계자 문제로 인해 빠르게 붕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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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는 정말 의리에 상징이었나요??
관우는 유비에 대해 충성과 의리를 지킨 인물입니다. 200년 조조가 서주를 점령했을 때 관우는 하비성을 지키다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 때 그는 유비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조조에게 세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한나라 항복한 것이지 조조에게 충성하지 않으며, 유비의 가족을 보호하고, 유비 소식을 들으면 떠날 수 있다는 조건입니다. 조조가 비록 극진하게 대접했지만 관우는 모든 재물을 포기하고 유비에게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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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를 언제부터 침공하나요
스코틀랜드의 여왕 마거릿이 사망하면서 위기에 빠져 귀족들이 서로 왕위를 주장하며 혼란이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는 중재자를 자처하며 존 발리올을 왕으로 세우고, 그를 허수아비로 다루려 했습니다. 그런데 존 발리올이 반발하자 에드워드 1세는 1296년 침공하여 속국으로 만들려했습니다. 이에 윌리엄 윌리스와 로버트 더 브루스 같은 지도자가 등장하여 독립운동을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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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왕국은 잉글랜드와 역사적으로 주로 어떤 관계였나요
13세기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를 침략하여 갈등이 본격화되었으며, 당시 윌리엄 윌리와 로버트 더 브루가 독립운동을 이끌어 1314년 베넉번 전투에서 승리하여 독립을 달성했습니다. 독립 이후 스코틀랜드는 프랑스와의 "올드 동맹"을 통해 잉글랜드를 견제했습니다.장미전쟁 이후 1505년 제임스 4세가 잉글랜드의 헨리 7세의 딸 마거릿 튜더와 결혼하며 혈연관계를 맺었으며, 1603년 제임스 6세는 잉글랜드의 제임스1세로 즉위하여 스튜어트 왕조를 열어 동군연합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잉글랜드의 앤 여왕 당시 1707년 합병하여 그래이트브리튼 왕국이 탄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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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제자가 라파엘로인가요?
레오나로드 다빈치의 제자로는 프란체스코 멜치, 안드레아 살라이가 있습니다. 라파엘로는 다빈치와 동시대 인물로 그의 작품은 다빈치의 영향을 받았지만 사제 관계는 아닙니다. 그의 스승은 페루지노입니다. 그리고 도나텔로는 다빈치보다 약 100년 앞선 조각가입니다. 그는 르네상스 초기 대표적 예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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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월리스는 스코틀랜드에게 있어 어떤 인물인가요
윌리엄 윌리스는 스코틀랜드에서 독립과 자유의 상징적 인물입니다. 그는 1297년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잉글랜드 군을 격파하여 독립운동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비록 1298년 패배하고, 1305년 체포되어 처형되었지만 스코틀랜드 국민들에게 민족의식을 강화하시는 촉매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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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기에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로부터 독립을 하게되나요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가 1296년 침공하여 지배를 시도했습니다. 이에 스코틀랜드 귀족과 민중은 강력히 저항하며 독립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1297년 윌리엄 윌리스는 초기 승리하였지만 이후 패배하여 처형되었으며, 로버트 더 브루스가 왕으로 즉위하여 독립 운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1314년 베넉번 전투에서 승리하여 사실성 독립을 쟁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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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전쟁이후에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서로 평화적으로 지낸이유가 무엇인가요
장미전쟁(1455-1487) 이후 헨리 7세가 즉위하여 튜더왕조가 출범하였습니다. 헨리 7세의 딸 마거리 튜더를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4세와 결혼시켜 두 나라는 동맹 체제를 강화하였습니다. 이 혼인은 두 왕실을 하나로 통합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잉글랜드의 스튜어트 왕조를 여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양국은 프랑스와 대응하기 위해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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