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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최악의 지도자 폴보트는 누구인가요?
폴포트는 캄보디아 공산주의 정당인 크메르 루즈의 지도자이며, 1976년부터 1979년까지 총리를 역임했습니다. 그의 별칭인 '폴 포트’는 영어의 ‘폴리티컬 포텐셜’ (Political Potential) 혹은 프랑스어의 ‘폴리티크 포탕시엘’ (Politique Potentielle)의 줄임말로, 영어와 프랑스어로 "정치적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폴포트 정권 동안 '노동군'이라는 이름으로 약 2백만명의 캄보디아 시민을 도시에서 퇴출시켜 농촌으로 이주시켰으며, 농업에 대한 이상적인 이념을 추구하여 많은 사람들을 강제 노동하게 하고, 죽게 했습니다. 그의 집권 기간에 폴포트는 가혹한 학살을 자행했으며, 캄보디아 인구의 1/4가 사망했습니다. 1979년 베트남군의 침공으로 정권을 잃었으며, 1998년 연금중에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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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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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일어난 킬링필드란 어떤 역사적 사건이었는가요?
캄보디아의 폴포트가 이끄는 끄메르 루즈 정권(1975-1979)이 자신들의 이념을 강요하면서 170~200만명을 집단학살했습니다. 크메르 루즈가 자행한 학살로 죽은 시체를 한꺼번에 묻은 집단 매장지를 "킬링필드"라 합니다. 킬링필드는 현재까지 2만 곳이 발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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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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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상 바나나는 언제부터 수입해서 먹기 시작했나요?
바나나는 예전에 매우 비싼 과일이었습니다. 1958년 군납품에 한해 수입이 허용되었다고 합니다. 1977년 바나나 16가닥 한송이에 5500원이고, 한가닥에 343원이라고 합니다. 자장면 한그릇에 200원일 때이니 엄청 비싼 과일이죠.수입이 되었지만 일부 특권층을 위한 과일입니다. 이렇게 비싼 과일이 국민 과일이 된 것은 우르과이 라운드가 타결되는 과정에서 1991년 본격 수입 자유화가 되면서 저렴한 과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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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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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과 흥선대원군은 왜 대립하게 되엇나요?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대립 이유로는 고종의 집권 초기와 다르게 성장하면서 왕권 강화 과정에서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특히 서원 철폐 등의 이견으로 대립되었으며, 최익현의 탄핵 상소로 물러나게 됩니다. 아내 명성황후와 갈등 등으로 더욱 격화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임오군란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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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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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가 미노스에게 선물한 탈로스를 움직이게 만든 방법은?
탈로스가 능력을 가진 방법에 대해서는 신화마다 다르지만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불과 금속을 다루는 신으로 탈로스와 같은 기계적인 생명체를 창조할 능력이 있었습니다. 또는 프로메테우스의 도움으로 인공지능 능력 구현에 기여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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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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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우스에게 아테나 여신이 신들의 무구를 빌려다 줬다고요?
아테나가 메두사를 처치하기 위해 페르세우에게 빌려서 가져다 준 무기는 하데스의 투명 모자인 '퀴네에', 아폴론의 '아프테미스의 활', 아테나의 방패 아이기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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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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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 세상에 보물이 남아 있을까요?
아직도 보물을 찾는 것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미 정글 깊숙에 숨겨져 있는 엘도라도 황금도시를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숨겨두었다고 알려진 보물을 찾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어요. 가장 큰 보물 찾기는 1227년에 징기츠칸의 무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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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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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인권선언을 한 키루스란 사람에 대해 알려주세요~
키루스 2세는 기원전 555년 메디아 왕국을 점령하고, 기원전 545년 소아시아를 점령한데 이어 기원전 539년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멸망시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초석을 마련하여 당시부터 왕조의 시작으로 봅니다. 키루스 2세가 기원전 539년에 남긴 원통에는 모든 인종과 종교의 평등, 종교의 자유, 노예제 폐지, 재산권 보장 등을 명시하여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요. 이는 프랑스 혁명 당시 발표된 인권선언문 보다 앞선 인권 선언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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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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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서악동에 법흥왕으로 추정되는 돌무지덧널 무덤을 발굴중인데 이게 신라역사를 어떻게 바꿀 수도 있는 건가요?
신라 무덤은 마립간에 해당되는 5세기 돌무지 덧널무덤, 그리고 6세기 굴식 돌방 무덤으로 인식해 왔습니다. 돌무지 덧널무덤으로 대릉원을 대표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법흥왕릉으로 추정되어온 서악동 4호분은 굴식돌방무덤일 것으로 추정해왔습니다.그런데 기존의 예상을 깨고 대릉원에서 볼 수 있는 돌무지덧널무덤의 흔적인 2개의 단으로 촘촘하게 쌓은 호석층의 동무더기들이 확인됐습니다. 따라서 기존 학설을 깨도 6세기 돌무지덧널무덤일 가능성과 그로 인한 금관 등 유물의 존재를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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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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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지처라는 말의 뜻이 무엇이고 생긴 유래가 어떻게 되는가요?
조강지처(糟糠之妻)는 糟 (지게미조), 糠 (겨강), 之( 갈지), 妻 (아내처)로 구성된 한자어입니다. 지게미와 쌀경를 함께 먹어온 아내로 가난을 같이 견뎌낸 본부인을 말합니다. 조따르면는 <후한서>에 광무제와 송홍(宋弘) 사이의 일화와 관련됩니다. 송홍은 광무제(光武帝)를 섬겨 대사공(大司空)에까지 올랐습니다. 어느 날 광무제가 미망인이 된 누님 호양공주에게 신하 중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의중을 떠봤다. 호양공주가 송홍을 칭찬했습니다. 며칠 후 광무제는 병풍 뒤에 호양공주를 앉혀놓고, 송홍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광무제가 송홍에게 물었습니다. “속담에 귀해지면 사귐을 바꾸고, 부자가 되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는데 그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겠지?”라고 하였습니다.송홍이 지체없이 답했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신은 가난하고 비천한 때 사귄 벗은 잊으면 안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쫓아내면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貧賤之友 不可忘 糟糠之妻 不下堂).” 이 말에 광무제와 호양공주는 크게 낙담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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