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황제가 몽골의 대칸을 자처한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청은 17세기부터 4개의 외몽골 아이막과 6개의 내몽골 아이막을 포함하여 몽골 고원을 지배하였습니다. 누르하치는 자신이 칭기즈칸의 후예이며, 몽골 제국의 계승자로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몽골의 대부분을 정복했습니다. 1635년 북원의 대칸 에제이가 인장을 홍타이지에게 넘겨줌으로 북원 왕조는 끝나고 청의 황제가 대칸을 계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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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종은 인조반정당시 왜 순순히 포기하고 자살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인조반정(1623)이 일어나자 영의정으로 있던 박승종은 아들 경기감사 박자흥을 오라고 하여 절간으로 들어가 같이 자결하였습니다. 당시 아버지 박승종은 62세이고, 아들 박자흥은 43세로 세자의 장인입니다. 평소 광해군이 패망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늘 주머니 속에 독약을 넣고 다니면서 변을 당할 대 자결하려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상을 잃어버려(?) 하인에게 목을 매게하여 죽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네요.)박승종은 역모가 일어나기 전에 그 조짐을 경계하였다고 하고, 반정이 일어나자 군사를 모아 공략하려고 하였으나 조정이 이미 반정 세력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중지하였습니다. 아마도 항상 자결을 준비한 것도 이유이지 않을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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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이 건국한 때는 청동기시대인가요? 철기시대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조선은 청동기 시대를 배경으로 성립되어 철기 시대까지 존재한 나라입니다. 비파형 동검, 민무늬 토기, 청동제 무기와 거울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조선은 기원전 5세기 경 중국으로 부터 철제 농기구와 무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기원전 4세기 경에는 전국시대 연나라와 대결할 정도로 발전합니다. 또한 위만 집권 이후 철기와 중계 무역으로 성장하였으며, 이를 시기한 한무제의 침략으로 기원전 108년 멸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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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하치가 조선에 파병을 제안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누르하치는 건주여진의 추장으로 1592년 임진왜란 당시 3만명의 군대를 보내 구원하고자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누르하치는 만주와 몽골족을 통합하면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누르하치는 조선을 '조서의 나라'라고 존칭까지 하면서 원군 파병을 제안하였는데, 순수한 뜻에서 조선을 도우려 한 것은 아닐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임진왜란으로 인해 조선이 약해진 틈을 타서 원군이라는 명분으로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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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의자왕의 무덤이 발견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의자왕은 660년 나당연합군에 패해 당으로 끌려가 당에서 곧 병사하였습니다. 그가 묻힌 곳은 낙양의 북쪽 망산에 있다는 손호와 진숙보 무덤 옆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망산은 행정구역으로 망산진이며, 시 중심에서 4km 떨어져 있습니다. 흔이들 '북망산천 간다'라는 말의 기원이 되는 산입니다.그런데, 의자왕이 묻힌 곳은 망산에서 동북쪽으로 15km 떨어진 맹진현(孟津縣) 송장진(送莊鎭) 봉황대촌(鳳凰臺村)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를 근거로 90년대 한중 조사팀이 봉황대촌에서 여러차례 조사 작업을 벌였는데, 왕자 부여융의 묘지석만 발견했을 뿐 의자왕의 무덤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2000년 현지에서 채취한 토양을 한국으로 가져와 능산리 고분군에 의자왕과 부여융의 묘지를 조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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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은 왜 죽임을 당한건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정도전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개국공신입니다. 그런데 정도전은 재상 중심의 정치를 이상으로 생각하였으며, 태조의 막내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군권 장악을 위해 왕자들과 공신들의 사병을 혁파하려 하였습니다.이와 같은 정도전의 정책에 이방원은 반기를 들어 1398년 1차 왕자의 난을 통해 방석과 정도전을 역모자로 몰아 제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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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환향녀는 어떻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병자호란(1636)으로 수많은 조선인들이 청으로 끌려간 피로인의 수는 약 50만명으로 추정됩니다. 조선은 피로인을 쇄환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일부 속전을 지불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피로인 가운데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들을 '환향녀'라고 합니다. 이들은 가까스로 귀국한 뒤 남편으로 부터 이혼을 요구받았습니다. 그러나 선조와 인조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으며, 대신 첩을 두는 것을 허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였습니다. 환향녀들이 이렇게 사회 문제가 되자 인조는 청나라에서 돌아오는 여성들에게 "홍제원의 냇물에서 목욕을 하고 한양으로 들오면 그 죄를 묻지 않겠다.'라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정조를 거론하면 엄벌하겠다고 영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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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와 차례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제사는 한 분이나 부부의 고인을 기리는 의식이고, 차례는 윗대의 조상들을 모두 기리는 의식입니다. 제사는 보통 저녁에 지내고, 차례는 아침에 지납니다. 그리고 제사는 종석으로 상을 차리나 차례에는 명절이나 계절에 따라 다른 음식을 올리기도 합니다. 제사는 고려 말부터 중국의 성리학이 영향으로 시작되었고, 차례는 차를 즐겨 마시는 중국에서 유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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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삼겹살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에도 돼지고기를 먹었르나, 삼겹살로 알고 먹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주로 양방가에서는 돼지고기를 주로 쪄먹거나 삶아먹었다는 하네요. 또한 돼지고기를 화로에 양념을 발라 먹었고 냉장, 냉동이 불가능했기에 짧게 보관하다가 수육으로 만들어 보관하고 먹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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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암행어사는 현재 직급으로는 어느정도 직급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암행어사는 지방관의 비리와 백성의 사정을 조사하는 국왕 직속의 임시 관리였습니다. 암행어사의 품계는 주로 종2품에서 정3품에 해당되었으며, 지방 수령들보다는 품계가 높았습니다. 각도 관찰사가 종2품이고, 군수가 종4품, 현령 종5품, 현감 종6품이니 현재의 도지사급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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