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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마지막전투인 황산벌전투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백제가 황산벌 전투에서 패배하고 수도 사비성을 잃어 멸망하였습니다. 신라는 나당 동맹을 원만하게 유지하여 백제의 영토를 점령하고 고구려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하여 삼국 통일을 달성했습니다.두번째로 화랑 관창을 통해 신라 화랑의 용맹한 정신을 확인하고, 오늘날까지 우리나라 청소년 수련 정신의 이상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세번째는 신라군의 1/10분에 지나지 않지만 백제 계백 장군을 비롯한 백제군의 조국을 위한 충성과 불굴의 희생 정신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군인정신의 모범이 되어 계승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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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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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때 통문과 사발통문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통문은 어떤 사안에 대해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작성하여 게시한 문서입니다. 대표전인 것이 사발통문으로 1894년 1월 고부농민봉기를 알리기 위해 사발로 그린 다음 주모자를 알지 못하게 이름을 돌려가며 작성한 통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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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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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기미상궁의 역할이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미상궁" 이란 수라상의 기미(氣味)는 왕이 수라를 드시기 직전 옆에 시좌하고 있던 큰방상궁이 먼저 음식 맛을 봅니다. 이것을 ‘기미를 본다’고 합니다. 이것은 독(毒)의 유무를 검사하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 의례로 되었습니다. 또한, 기미상궁은 왕의 신임을 받는 상궁 가운데 선발되어 왕의 음식을 맛보는 것 외에도 왕의 식사를 준비하고 정리하는 일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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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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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국가 등급은 황제국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 시대 연화가 끝날무렵 부르는 <풍입송>에서 임금을 ‘천자’로 부르며 ‘부처’와 같은 고귀한 존재로 칭송하는 노랫말로 부릅니다. 고려는 건국 당시부터 황제국을 칭하며 천수(태조), 광덕, 준풍(광종) 등 독자적 연호는 물론 폐하, 짐(朕), 태자(太子), 황후(皇后) 등 황제국의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고려는 이처럼 황제국을 자처하며 자국을 중심으로 세계(천하)를 인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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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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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메이지유신때 서양권의 민족으로 기원되었고 그림도 서양사람처럼 미화한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문명개화론에 바탕으로 메이지 유신이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개화파의 대표적인 학자로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일본이 아시아에서 벗어나야 발전해야 한다는 문화 의식으로 '탈아론'을 주장하며, 서구와 궤를 같이 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일본이 제국주의화로 가는 이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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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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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목종은 남자를 좋아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에서는 <화랑세기>를 통해 동성애가 성행했는 듯합니다. 고려에서도 목종과 관련하여 <고려사> '유행간 열전'에서는 '목종은 용모가 아름다운 사내였던 유행간을 매우 아껴서 용양(龍陽)의 관계까지 맺었다'고 했는데 여기서 용양이란 소위 남색(동성연애)을 했습니다.충선왕도 원충이라는 남성, 공민왕도 자제위를 두고 홍유와 관계하였습니다. 또한, 문학 작품에서도 동성애의 감정을 기록한 것이 많이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한림별곡〉에서는 미소년과 관리가 같이 그네를 타고 즐기며, 남의 방해를 받지 않고 둘이서 손잡고 소풍을 가고 싶다며 애절하고 낭만적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나 태도가 그리 엄격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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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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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최고화가중 한명인 이중섭은 소그림만 그렸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중섭(1916-1956)은 소 이외에도 닭, 어린이, 가족 등을 주제로 한 향토적이고 동화적인 작품들을 그렸습니다. 원산, 제주, 통영, 서울, 대구 등에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담배 은지화, 편지화로 많이 그렸습니다. 평생 가난과 피난 생활, 병환으로 고생하다 1956년 간염으로 사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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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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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복제품을 전시를 많이 한다고 하던데 그 이유와 장점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박물관에서 복제품을 전시하는 이유는 첫째 문화재의 도난 방지를 위해서입니다. 만약 복제품으로 전시하고 실물은 수장고에 보관한다면 보존에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다른 지역이나 나라로 이전 전시할 때 효율적입니다.두번째는 문화재가 원래 발굴된 지역이 아닌 박물관에 보관 전시 될 경우 원래 발굴 지역의 상징으로 해당 지역에서 지역 주민들을 위해 복제품으로 전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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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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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과거에 박물관에서 절도도난 사건이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사건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2003년 5월 15일 공주박물관에서 일어난 국보 도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밤 10시 강도 2명이 흉기로 위협해 눈과 입을 가린 뒤 결박하고 1층 전시관에 들어가 유리 진열장를 부수고 국보 제247호 금동관음보살입상과 고려청자 2점, 분청사기 한 점을 들고 달아났습니다.다행히 신속히 용의자들이 검거되었고 도난당했던 국보과 문화재들도 무사히 회수하였지만 당시 박물관들의 보안 불감증을 보여줬습니다.2006년 11월 6일 익산보석박물관에 귀금속 120여점을 털어 갔는데, 아직도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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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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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언제부터 옷을 만들어 입기 시작했던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인류능 10~50만년 전부터 옷을 입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첫 번째 옷은 동물의 피부와 털, 풀과 잎, 뼈와 껍질과 같은 자연적인 요소로 만들어졌습니다. 옷은 종종 입체 재단되거나 묶여있었습니다. 그리고 동물의 뼈로 만들어진 간단한 바늘은 최소 3 만년 전부터 가죽과 모피 의류가 있음을 보여줍니다.신석기 시대 가락바퀴를 이용하여 실을 만들고 바늘로 옷을 짷을 것으로 보입니다. 천을 만드는 것은 기존의 바구니 세공 기법을 그리는 인류의 기본 기술 중 하나로 부상했습니다. 가장 초기의 핸드 스핀들과 스태 플러와 기본 핸드 베틀로 발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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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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