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일반 백성들 간에 이혼이라는 개념이 없었나요?
조선시대에도 이혼이 존재했습니다. 조선의 기본 법전 가운데 하나인 <대명률>에 따르면 철거지악, 의절 등을 이혼 규정으로 삼았습니다. 다만 양반가의 경우에는 국가 승인, 관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평민들은 훨씬 쉽게 이혼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백성 사이에 '사정파의'(부부가 서로 마주 앉아서 더 이상 못산다고 말하고 헤어지는 것), 그리고 '합의휴서'라는 단순 서술문으로만으로 이혼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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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독립 운동가 중에는 어떤 인물들이 있나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김구, 윤봉길, 안창호, 유관순 등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이름모를 무명의 독립운동가가 있어 우리민족이 독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예를 들어 동풍신 열사는 여성 독립운동가로 유관순 열사처럼 만세운동을 이끌다 체포되었으며, 고문과 옥중 투쟁을 견뎌냈습니다. 아화림 지사도 여성 독립 운동가로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를 함께 추진하였습니다. 나석주는 의열단 단원으로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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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에서는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아라비아 숫자는 본래 인도에서 발명된 숫자입니다. 아랍 상인들은 이를 편리하독 판단하여 널리 사용한 것이고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사용합니다. 특히 유럽 상인들이 아랍 상인들이 사용하는 숫자라고 하여 아라비아 숫자라고 한 것입니다.현재 아랍권에서는 서양식 아라비아 숫자도 쓰지만 새롭게 디자인된 동아라비아 숫자를 쓰기도 합니다. 즉, 아랍권에서 아라비아 숫자를 쓰지 않는다는 오해는 일부 동아라비아 숫자로 표기하는 것 때문으로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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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들은 추운 겨울에 경복궁 근정전에서 어떻게 업무를 봤나요?
경복궁의 근정전은 정전으로 격식용 건물입니다. 조하, 대례, 사신 접견과 같은 의례 행사에 주로 활용되는 장소입니다. 물론 근정전은 난방이 부족하여 겨울철의 활용은 매우 제한적이었을 것입니다. 대신 근정전 옆의 사정전과 그 부속 건물인 천추전에는 난방이 가능하여 왕과 신하들이 실제로 일상 회의와 정책을 집행하는 장소로 운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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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공산당에게
물론 중일전쟁이 국공 내전에서 국민당에게 미친 영향도 있었을 것입니다. 국민당군의 주력군은 일본군에 의해 잃거나 손상이 컸습니다. 게다가 일본군의 공세에 국민당은 내륙 깊숙이 충칭으로 후퇴하였습니다. 반면 공산당군은 일본, 국민당과 거리가 있는 산악 지역에서 세력을 넓혔습니다. 하지만 공산당군은 최전선인 화북 지역에서 일본의 주력군과 맞서고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국민당군만 약화되었다고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민당은 정치, 경제 부패로 인민들의 지지를 상실했습니다. 또한 전략적으로 도시, 철도 중심의 점선 전략은 공산당의 면, 지역 전에 밀렸습니다. 즉, 중일전쟁으로 국민당군의 세력 약화도 있지만 국민당 스스로 문제와 민중의 지지를 받는 공산당의 조직력에 밀려 패배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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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흥도는 명을 어기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루어주었는데 세조는 끝까지 그 사실을 몰랐나요?
몰랐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당시 세조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라고 엄명을 내린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엄흥도는 이를 어기고 몰래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찾아 암장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숨어 살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당시 세조가 알았으면 결코 용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에서 드러난 시점은 중종, 숙종 때 공식 기록적으로 등장합니다. 1517년 중종 때 단종 묘를 찾으라는 명을 내려 '노산군묘'로써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숙종 때 엄흥도의 충의와 후손 면역 문제까지 논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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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왜 예수를 믿지 않는건지 궁금해요.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메시아로서 예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의 예언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 예수는 유대 율법 전통을 깨고 안식일을 지키기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게다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하니 황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교는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매우 강하게 강조하며, 하나님의 아들같은 개념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대교는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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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정치적 도구화는 당연할까? 아니면 근절되어야 할까?
역사를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못마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도 역사는 정치적 도구였으며, 정치와 역사를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역사는 국가 정체성, 국민 정체성과 정치 이념을 반영합니다. 하지만 역사를 자기의 입장에서 왜곡, 부정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정치인이나 정권은 친일, 독재를 옹호하며 역사를 재해석하거나 왜곡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올바른 역사 의식을 교육하는 시스템이 중요합니다. 학교, 언론, 학계가 자기 검열과 왜곡을 줄이고 논쟁, 토론, 근거를 제시를 기본으로 삼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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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라는 자원참 생각해보면 불공평합니다ㅎ
과거에 공룡 화석이 썩어서 석유가 되었다는 말이 퍼졌지만 오해입니다.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바다에 사는 플랑크톤, 단세포 생물, 조류 같은 미생물이 죽고 산소가 적은 바닥에 쌓여 수천만 동안 바뀌어 석유, 가스로 된 것이라 봅니다. 공룡이 사체가 직접적으로 석유 제조에 기여하지는 않습니다.그런데, 중동 지역에 석유가 집중된 것은 지형적으로 과거 얕은 바다였다가 산과 육지 생성 과정을 거쳐 바다에 쌓인 유기물 퇴적층이 지하에 파뭍혀 석유, 가스가 형성되기 좋은 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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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정해지는걸까요?
사람의 운명 가운데 수명은 우선 유전, 건강 요인에 의해 결정됩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자연수명에서 유전적 요소가 50%를 차지한다고 보고되었습니다. 또한 생활과 환경적 요인도 수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그리고 운명을 결정하는 요인 가운데, 종교, 종교 등 신념도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불교는 현생의 선행이 다음 삶을 결정하는다는 윤회 사상이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 먼저 간다는 느낌은 아마도 착한 사람이 빨리 떠나면 충격과 감정이 커서 기억에 오래 남기때문이라 봅니다. 하지만 선악이 수명을 결정하는 조건이라는 설득력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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