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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역과 군역, 요역이 무슨 의미인가요?
신역은 특정 신분 계층에서 세습적으로 부과되는 노동 의무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서리, 향리 등 직역을 가진 사람들이 일반 백성들과 달리 지속적으로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세습적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군역은 국가 방위를 위하여 16~60세까지 양인 남성에게 부과는 군사 활동을 하는 의무를 말합니다. 직접 군사 활동에 참여하거나 대신 군포로 납부합니다. 요역은 백성들의 노동력 징발을 말합니다. 가호의 인원 및 토지 면적에 따라 징발하며, <경국대전>에 따라 토지 8결당 1명을 징발하며, 연간 동원 기간은 6일로 제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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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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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시대 양반들은 군역을 면제받았나요?
조선시대는 양인 개병제로 본래 모든 양인은 군역을 부담해야 했습니다. 다만 양반은 관직을 통해 국가에 봉사하기 때문에 군역을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군역 면제 특권은 관직이나 관학생 신분일 경우 군역이 면제되었습니다. 혹은 직접 직접 군역 군역 대신 경제적 부담을 통해 군역을 대신하거나 노비를 보내는 방식으로 의무를 회피하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점차 양반의 신분적 특권이 강화되면서 점차 면제되었고, 그 부담은 주로 일반 백성들로 제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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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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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토사상이 어떤 사상인지 알려주세요.
왕토 사상은 모든 토지와 사람은 왕의 소유라는 이념입니다. 국가는 토지 소유권을 독점하며 백성들에게 조세를 부과할 권리를 정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 아래 왕의 땅 아닌 곳이 없고, 왕의 신하 아닌 사람이 없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합니다. 즉 토지는 국가 소유로 간주되며 이를 경작하는 농민은 수확물의 일부를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왕토 사상을 바탕으로 왕이 토지의 소유 대신 관리들에게 수확물을 징수하는 수조권을 분급하고, 관리는 전주로서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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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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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에서 보면 남자들도 상투를 모두 올렸는데, 필수적으로 올려야 하는것이 었나요?
조선시대에는 상투를 올리는 것이 성인 남성의 상징합니다. 이는 혼인하거나 관례를 치른 남자들이 필수적으로 상투를 틀었습니다. 상투를 올리지 않은 남자는 총각이라 하며, 머리를 땋아 늘인 상태로 다녔습니다. 나이가 많아도 혼인하지 못힌 경우에는 하대받거나 낮은 신분으로 여겨졌습니다. 일부는 '건상투'라고 하여 상투를 틀어 성인처럼 하기도 했습니다.상투는 단순한 머리 모양을 넘어 성년과 혼인의 상징이며, 신분과 예법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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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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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안동 김씨 가문에 복수를 했나요?
흥선대원군은 조선 후기 안동 김씨 세도 정치가 지배적이던 시기에 왕족으로서 불우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안동 김씨 세도 가들에게 "상갓집의 개"라 불릴 정도로 조롱받았습니다. 그러나 철종이 후사가 없이 사망하고 고종이 즉위하면서 흥선대원군이 섭정으로 실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안동 김씨의 권력을 대폭 축소하고 인재 등용을 고르게 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제한했습니다. 비변사를 폐지하고 의정부를 강화하였으며, 서원을 철폐와 조세 개혁을 통해 국정을 쇄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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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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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에는 최대 몇 명이 승선을 했고, 배를 움직이는 노는 모두 몇개 인가요?
거북선은 조선 수군의 돌격 전투선으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제작하여 활약했습니다. 거북선은 임진왜란 초기 5척이 운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임진왜란 기간 동안 추가로 제작되었으나 칠천량 해전에서 대부분 침몰했습니다. 거북선 1척에는 약 100~150명이 승선했다고 합니다. 주요 구성원은 선장 및 장교 10명, 화포장과 포수 32명, 사부(활)는 약 14명, 그리고 노군이 80~90명정도 됩니다. 거북선의 노의 갯수는 16개의 노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당시에 제작된 거북선은 모두 소실되어 현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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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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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화폐가 생기기 전 교환수단은 무엇이었나요?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성종 건원중보 발행서부터 꾸준히 화폐를 발행하여 유통시켜려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화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일반적으로 물품 화폐를 교환 수단으로 하였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쌀입니다. 이는 조세 납부와 거래에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삼베, 면화 등을 화폐 처럼 사용하여 거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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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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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대의 전분 9등급이란 것이 뭔가요?
과전법 체제에서는 전세 과세율은 생산량의 1/10를 거두는 정률세였습니다. 또한 기존의 답험손실법은 관리들이 직접 토지 수확량을 조사하여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였습니다. 이 때문에 부정부패와 불공정했습니다. 이에 세종은 공법 개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전분 6등급과 연분 9등법입니다.조선 시대의 전분 6등급과 연분 9등법은 세종대왕 때 시행된 공법입니다. 전분 6등법은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6등급으로 나누어 세금을 부과하는 것입니다. 비옥한 토지는 높은 세율, 척박한 토지는 낮은 세율을 적용했습니다. 연분 9등법은 풍흉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누어 세금을 부과하는 것입니다. 매년 농사를 풍흉에 따라 상상년에서 하하년으로 9등급으로 나누어 1결당 20두에서 4두로 정액세로 납부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제도는 조선 초기 공평 과세를 실현하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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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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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제의 구분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양천제는 조선 시대의 신분 구조입니다. 양인은 자유민으로서 과거에 응시하여 관직에 진출할 자격을 가지며, 조세와 국역의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양인에는 양반, 중인, 상민이 포함됩니다. 천민은 비자유민으로 개인이나 국가에 예속되어 천역에 종사합니다. 노비, 백정, 진척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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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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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성당은 서로 다른 이론인가요?!
교회와 성당은 모두 크리스트교와 관련되지만 종파에 따라 사용되는 용어가 다릅니다. 모두 하느님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습니다. 성당은 천주교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미사와 전례를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교황과 사제 중심의 계층적 구조가 특징입니다. 교회는 주로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설교와 찬양을 중심으로 예배를 진행하는 장소입니다. 성당은 거룩한 건물로서 장식과 구조가 경건하다는 의미가 강조되고, 교회는 간소하고 실용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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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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