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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복고풍 시티팝 노래가너무듣기좋네요.원래옛날곡이아닌최근에발표된 시티팝 노래들은 어떤게 있나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저도 시티팝 장르 참 좋아하는데요. 옛날 노래들은 유명한데 최근에 나온 시티팝노래도 몇가지 좋은 노래들이 있습니다. 제 개읹거으로 추천하는 노래는 일본 유키카라는 가수의 시티팝인데요. 한국어로도 불러서 노래도 너무 좋고 시티팝에 너무 잘 어울리는 보컬이에요. '서울 여자' 와 '네온' 추천드려요. 시티팝장르가 레트로 느낌도 물씬 나면서 현대에도 잘 어울러져서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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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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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관람할때 뒷좌석일경우 배우가 잘 안보여 몰입도가 떨어지던데 왜 뒷좌석도 이렇게 비싼건가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저도 의문입니다. 요즘 물가가 오르는것과 동시에 공연 가격도 많이 올랐을뿐더라 자리까지 구분없이 높게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예전에는 무대가 잘 보이는 구역과 멀어짐에 따라 좌석 등급이 나눠지고 가격도 합리적으로 나눴었는데요. 최근들어서는 시야와 관객이 느끼는 거리를 고려하지 않고 통으로 묶어서 높은 가격을 책정하더라구요. 이에 대한 불만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부분은 결국 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 좌석이 팔리지 않는곳도 많아져야 다시 수정이 있게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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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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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은 처음부터 3개로 기획된건가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박찬욱은 복수를 소재로한 3편을 기획했는데요.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 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은 처음부터 구상한것까지는 아닌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올드보이가 대흥행을 하게 되고 해외에서까지 큰 주목을 받게되면서 세번째 작품까지 복수 키워드를 활용해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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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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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무신이 문신의 역할까지 한 경우는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는 잘 모르겠지만 고려시대 최승로의 경우에 무신으로 고려국경지대를 변방을 지키는 무신으로서의 역할과 함께 현종에게 시무 28조라는 상소문을 올려 고려시대 말 불교국가에서 유교국가로의 탈바꿈에 큰 공헌을 한 문신입니다. 이후 조선시대 유교국가의 바탕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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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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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방계 출신의 왕인 선조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맞습니다. 선조는 조선왕조 역사상 최초로 서자 출신임에도 왕이된 인물입니다. 방계혈통으로서는 최초로 왕이 된 케이스 인데요. 선조의 아버지였던 덕흥군이 아들 셋이 있었습니다.바로 하원군, 하릉군, 그리고 선조인 하성군 인데요. 당시 왕이었던 명종임금이 장남인 순회세자를 잃고 후사가 없이 죽게 됩니다. 정비인 인순왕후는 왕자를 낳지 못하였고 여러 후궁역시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합니다. 해서 이복형제였던 덕흥군의 아들과 함께 여러 왕손들을 궁중에 데려다가 가르치며 자질을 엿보았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어릴적 선조의 영특함이 매우 뛰어났다고 하며 그것을 맘에 들어한 명종이 선종 하성군에게 왕위를 전수하기로 했다고 전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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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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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무협 영화나 소설등에 자주 등장하는 배경장소 소림사는 누가세웠으며 절에서 무술을 익히게된 동기는 무엇인지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소림사는 서기495년 허난성의 송산 사이에 지어졌습니다. 그곳에서 불교를 전파한 최초의 승려는 부다바드라(佛陀跋陀罗)였으며, 중국인은 단순히 붓타(跋陀)라고 부릅니다. 소림사 무술은 중국 무술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하게 알려진 무술이지요. 실제 중국민속속담에서도 '천하의 모든 무술은 소림에서 시작되었다' 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소림사에 무술을 익히게 된 동기는 당시 불교를 전파한 최초의 승려 부다바드라의 첫번째 두명의 중국 제자 후이광(慧光)과 셍추(僧稠)는 원래부터 매우 뛰어난 무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주석 지팡이를 이용한 셍추의 기술이 당시 중국 불교경전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네요. 아마도 이 소림 승려는 불교에 귀의하기전 군인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시 중국은 항시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나라와 당나라의 관계에서 소림의 승려들이 전쟁에 참여한것으로 예상되고 그로인해 무술을 끊임없이 배웠을거라고 생각되어지고 이후에도 몸과 마음의 수련을 위해 무술을 익히는것이 굳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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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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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가면 필수코스로 왜 루브르 박물관을 넣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무래도 여행을 하는 목적중에 가장 큰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ㅎㅎ 여행이라고 하면 내가 접하고 태어난 나라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라의 문화와 예술 역사를 경험하고 배울수 있는 장점이 크잖아요? 그런 면에서 볼때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경우 2박3일을 봐도 완전히 다 보기 힘든만큼 전세계의 여러 문화 예술 작품들이 한곳에 모여 있습니다. 이 모든것을 다 접하기 위해 여러 나라를 갈 필요없이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는것으로 가능하니 다들 필수 코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물론 이런 박물관이 결국 서구열강들의 침략증거라는 점은 씁쓸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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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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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지치기의 유래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딱지치기는 주로 딴딴하고 판판한 종이를 이용하여 정해진 모양으로 접은뒤(주로 반듯한 네모) 방어자는 땅에 두고 공격자가 땅에 있는 딱지를 내리쳐 뒤집는 것으로 승패를 결정하는 우리나라 전통 놀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당시 종이가 귀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옛날에는 헌책표지라던지 헌장판 같은것을 네모로 오려서 만들었다고 해요. 이런 딱지치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진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다만 종이가 보급되 대중화된 시기로 짐작하건데 194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딱지를 접어 놀지 않았나 예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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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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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을 우리나라의 사람들은 민족의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백두산의 절반이 중국 영토에 넘어가게 된 이유는 1950년 당시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한국은 미국의 도움을 받고 북한은 중국의 긴밀한 도움을 받았었지요. 이후 휴전을 하고 남북한이 각각 따로 독립정부를 수립하여 북한은 중국과 여러 외교적 관계를 맺었습니다. 해서 당시 중국과 북한간에 국경이 맞닿아 있어 정식으로 조중변계조약이라는 국경을 결정하는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때 이 국경설정으로 인해 백두산 천지가 반조금 넘게(54%쯤)는 북한땅으로 반조금 안되게는 중국땅으로 인정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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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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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님이 도시락폭탄을 쓴것이 아니라던데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윤봉길 의사는 일본 식민지 시절 수뇌부 암살을 위해 물통 폭탄과 도시락폭탄 두개를 다 소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물통이 아무래도 슈루탄 모양과 유사하여 멀리 던지기도 유용하고 안에 있는 끈을 뜯고나서 얼마뒤 큰 폭발을 일어나게 하는 무기였다고 하니 처으에는 수뇌부를 향해 물통폭탄을 던져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후 도시락 폭탄은 자살용으로 터트리려고 했으나 곧바로 일본군인들에게 체포당하게 되어 도시락폭탄 폭발은 실패했다고 하네요. 결국 둘다 폭탄용으로 소지했던것이고 물통은 성공 도시락은 불발이 된것입니다. 이 일화가 알려지면서 도시락이 더 잘 알려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네요. 종종 역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기록되고 퍼져나갈때 대중들이 더 쉽게 인식되고 기억하기 좋은쪽으로 각색되거나 구전된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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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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