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철학자 구스타프 라드브루흐가 제시한 공식은 무엇인가요?
독일의 법철학자인 라드브루흐는 “극도로 부정의한 실정법은 법이 아니다”라는 형태의 라드부루흐 공식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는 실정법이 너무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정의에 위반하는 경우에는 ‘정당하지 못한 법’이 되며 이 때에는 정의가 법적 안정성에 우선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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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스님들은 왜 고기를 먹지 않는건가요?
불교에서 육식이 전면적으로 금지된 것은 대승불교가 태동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육식이 금지된 주요한 이유는 윤회의 관점에서 보면 전생의 부모나 형제·친척을 먹는 것과 같다거나, 육식이 공격성을 발산하게 해 주위를 공포스럽게 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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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 효과라는게 정확하게 어떤 때에 쓰는 말인가요?
베르테르 효과는 유명인 또는 평소 선망하거나 존경하던 인물이 자살할 경우에 발생합니다. 사람들은 유명인이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에 처해 있던 것을 느끼며 심리적으로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유명인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유사한 방식으로 잇따라 자살을 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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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이라는 학문은 무엇을 탐구하는 건가요?
법철학은 법의 본질, 법과 정의 및 도덕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학문입니다. 또한 법이 가지는 사회적인 성격에 관한 이론적인 성찰들도 법철학의 영역에 포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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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우친 사람이 줄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거와 달리 지식의 양이 매우 방대해지고 학문분야의 분업화가 고도로 이루어짐에 따라 현대에는 과거와 달리 뛰어난 한 사람의 천재가 모든 지식 부분을 아우르는 성취를 내기에는 힘든사회가 되었습니다.현대의 학문 분야는 소수의 천재가 아니라, 각 세부 분야 별로 특화된 다수의 전문가들이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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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윤리 과목 불교 도가 사상 관련 질문입니다
도교와 불교는 모두 근본적인 도(道)를 깨닫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불교와 달리 도교는 도를 표면적으로 정치 철학화시켰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지닙니다. 또한 불교에서 도가 번뇌를 벗어나는 길을 제시, 자기 해탈에 중점을 두는 데 비해, 도가 사상에서의 도는 만물과 하나 되는 길을 제시해 ‘우주 해방’을 강조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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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는 어디에서 유래했나요?
안녕하세요. '필리버스터'라는 말은 1851년에 처음으로 쓰였습니다. 이 낱말은 스페인어 '필리부스테로'(filibustero)에서 나온 말로, '해적' 또는 '도적', '해적선', '약탈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당시 '필리버스터'란 표현은 미국에서 보통 미국 중앙 정부를 전복하고자 하던 남부 주의 모험가들을 이르는 말이었으나, 토론을 전횡하는 방식이 이와 같다고 여겨져 의사 진행 방해자를 이르는 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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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시대의 단군왕검은 실존했던 인물인가요?
안녕하세요. 단군왕검의 실존여부는 학계에서도 여전히 논란 중인 문제입니다. 단군신화의 의미를 해석해보면,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설정한 것은 천명(天命) 사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인간을 다스리는 동양사상의 반영일 것입니다. 또한 환웅은 이주민이고, 곰과 호랑이는 원주민으로 볼 수 있습니다.곧 곰을 토템으로 한 종족과 범을 토템으로 한 종족이 있었는데, 결국 곰을 토템으로 한 종족과 타협하여 동맹관계를 성립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보편적 인류사 발전 단계로 보아 단군은 한 정치집단의 수장 또는 군장으로 해석됩니다. 여기서 곰족은 직접적 국가 구성원이고, 범족은 타협적 피지배 세력으로 각각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군은 대동강을 배경으로 한 부족장 또는 군장으로 군림한 지배자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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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티스가 실제로 존재했나요?
안녕하세요. 아틀란티스를 대서양에 존재하는 거대한 대륙으로 생각한다면, 실존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틀란티스는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 《크리티아스》에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티아스》에서는 아틀란티스가 플라톤이 살았던 시기보다 9천 년 전, 즉 기원전 9300년 무렵에 아테네 침공 후 바다에 가라앉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설정은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가장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문명권인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조차 이때는 아직 거대 문명국이 등장하지 않았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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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는 왜 신라를 멸명시키지 않았을까요?
안녕하세요. 당나라가 나당전쟁에서 패배한 후에도 당나라의 고종은 신라를 무너뜨려 한반도 전역 정벌을 이루겠다는 미련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라를 다시 공격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와병중이던 시중 장문관이 나서서 양면전쟁을 우려하며 반대하였고 고종이 결국 장문관의 간언을 받아들여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683년 고종의 사망, 후계자 문제 혼란, 측천무후의 즉위로 인한 무주의 건국 등 당나라 내부 사정이 어수선해지면서 결국 당나라의 신라 재공격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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