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우유는 왕만먹는 특별식 이라고 하던데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말기에 우유를 조달하는 관청인 유우소(乳牛所)가 생겼는데, 그것이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궁궐 살림을 담당하는 사복시 아래의 타락색(駝酪色)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우유( 타락)은 워낙 대량으로 짜는 기술도 없어서 소량으로만 진상되던 음식이라 일반인들이 맛을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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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호치민을 동양의 파리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베트남의 호치민은 고풍스러운 1천년의 역사와 활기찬 대도시의 일상이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즐길 거리와 먹거리, 볼거리가 풍성한 곳 입니다. 또한 프랑스로부터 80년간 지배받은 아픈 역사가 있는 곳으로 유럽풍 건축 양식이 많이 있어서 '동양의 파리'로 불리기도 하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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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조약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베르사유 조약이란 1차 대전 이후 1919년 6월 독일 제국과 엽합국사이 맺은 평화협정인데 파리 강화 회의 도중에 완료했고, 협정은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서명했으며, 1920년 1월 10일 공포했다고 합니다. 조약은 국제 연맹의 탄생과 독일 제재에 관한 규정을 포함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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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5일 해방 이후, 우리나라 국익을 위하여 외국에서 로비스트로 활동한 사람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있습니다. 1970년대 배경으로 만들어진<남산의부장들> 에서 김소진이 연기한 로비스트 데보라 심의 실제 모델은 한인 출신인 수지 박 레게트 입니다. 그녀는 1971년 미연방하원의장 칼 앨버트의 비서로 활동하며 미국 정계와 인맥을 쌓고 로비스트로 활동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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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먹는 떡국은 장수의 의미라는데 맞는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맞습니다. 무병장수 떡국에 사용하는 긴 가래떡처럼 장수하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떡은 끊기지 않고 길게 뽑을수록 좋다고 하여 떡을 뽑을 때 자르지 않고 최대한 길게 뽑는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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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농사짓는곳이 왜 둥근원형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우디의 농토가 원형인 이유는 기름보다 식량이 귀했던 사우디 정부에서 1970~90년대에 대규모 관개 프로젝트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라고 합니다. 논밭이 일정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논밭 가운데에 관개 펌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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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볼은 누가 처음 만든건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도수가 높은 위스키에 소다를 타서 마시는 방법은 19세기 영국 상류층에서 먼저 유행하던 방식이었는데, 이때는 스카치 앤 소다 혹은 위스키 앤 소다로 불리었습니다. 이게 미국으로 넘어가 기차 식당칸에서 톨 글래스(Tall Glass)에 담겨져 제공되면서 미국에서 큰 유행됬고 바텐더들은 이런 방식의 칵테일을 하이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합니다. 즉, 하이볼이란 명칭은 바텐더들 사이에서 쓰이는 슬랭에서 출발한 단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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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뒷면에 몇쇄 몇쇄 하는 것은 쇄당 몇 부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책 뒷면에 몇쇄 몇쇄 아는 것은 부수가 아니라 몇 번 인쇄를 하는가에 따른 인쇄 출판 횟수 입니다. 즉 처음 인쇄를 하는 것을 초판 인쇄라고 하고 그 이후에 재판 인쇄를 몇 번 하는것을 표기 한 것 입니다. 보통 책은 발행 되면 책의 원가는 보통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2만원 짜리 책이라고 가정 하며 그중 4000-5000원 정도가 원가이고 2천원 정도가 작가의 인쇄이고 7천원 정도가 출판사 몫이고 서점에서 나머지 7천원 정도로 가져 갑니다. 보통 책을 한번 찍을 때 1천권에서 1만권 정도로 인쇄 하니까 최소 수량인 1천권만 다 팔려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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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사람이 죽으면 집에서 장례치를때 시신은 어떻게 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시골에서는 장례를 치를 때 병원에서 안하고 집에서 장의사를 불러 다가 장례를 치뤘습니다. 장의사란 시체의 몸을 다 닦아주고 염을 해서 시체가 부패 하지 않게 하고 관을 짜서 그 안에 돌아가신 분의 시신을 모시는 일을 하던 직업이였습니다. 지금은 병원에 장례식장에서 이런 일들을 다 해주지만 전에는 장의사들이 하던 일이 였습니다. 이러헤 관에 모신 시신은 병풍 뒤에 관에 모셔 놓고 장례일인 3일상이 끝난 후에 장지로 나가게 되는 방식 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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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에 대한 복권이 조선전기에는 안되고 조선후기에는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세조가 어린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가로 챈 사건은 누구도 입에 쉽게 말을 담기 어려운 사건 이였습니다. 만일 단종의 복권을 논함ㄴ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할 수 있기 떄문 이였지요. 그래서 7대 세조왕이 사후에도 쉽게 단종의 복권에 대해서 상소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약 200년 지난 1670년에 19대 숙종이 재위한 후에야 비로소 단종의 복권 문제가 대두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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