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코마니는 누구의 의해서 언제 만들어진 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데칼코마니( décalcomanie)는 장식 기법 중 하나로, 도자기 혹은 기타 물건 등에 판화 혹은 미술 작품을 옮기는 것을 말한다.1750년 영국에서 최초로 발명되었으며, 프랑스에서 최초로 데칼코마니( décalcomanie)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영어로는 데칼코마니아(decalcomania)라고 불립니다. 1936년 초현실 주의 화가 오스카 도밍게즈(Oscar Domínguez)가 종이 위에 구아슈(gouache) 기법으로 그림물감을 바르고 그것을 두 겹으로 접거나 다른 종이를 그 위에 겹쳐 압착했다가 떼어내는 방식으로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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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려장이라는 어이없는 풍습은 왜 있었던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 부터 효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 온 민족 입니다. 고려장이란 고려 시대에 늙고 병든 사람을 지게에 지고 산에 가서 버렸다는 전설로 세간에 알려져 있으나, 어떤 고려 문헌에서도 실재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고 추측 건테 아마도 일제 강점기에 우리민족을 폄하 하려는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추측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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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언어에도 한국어처럼 이상, 이하, 초과, 미만 등의 표현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물론 다른 언어 들에도 이상, 이하, 미만, 초과 라는 말이 존재 합니다. (영어,중국어, 둑일어순)1) 이상 -more than, 以上, mehr als2) 초과-exceeding , 超過, über-over 3) 이하- not more than , 以下, weniger als- less than 4) 미만-under , 不足, u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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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얼은 중인보다 대우받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얼은 얼자에 비해서 양반인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족보에도 이름이 올랐으나 사회적으로는 중인으로 취급 받았습니다. 얼자는 아버지의 인정을 못받고 천인인 어머미의 신분에 따라 천인 취급을 받고 족보에도 읾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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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얼자는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얼(庶孼)은 주로 대부분의 조선시대의 양반의 후손 가운데 첩(妾)의 몸에서 나온 소생이라는 자손(서출 후손)을 뜻하며, 그와 동시에 양인(良人)이라는 신분에 속하는 첩이 낳은 서자(庶子)와 천민(賤民)에 속하는 첩이 낳은 얼자(孼子)를 모두 아울러 함께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서자는 양반인 아버지가 자녀라고 인지하여 정식으로 족보에 이름이 올랐을 때에는 법적으로 양반이었으나, 사회적으로는 중인의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인지를 받지 못한 서얼은 법적으로 어머니의 신분에 따랐는데, 특히 얼자는 인지를 받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고 합니다.(예. 홍길동) 다만, 얼자의 어머니가 면천(免賤)한 경우에는 얼자는 양인(良人)이 되었다고 합니다.(예. 성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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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가대표 축구단 이름이 왜 양지축구단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지(陽地)축구단이란 이름은 중앙정보부의 부훈인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에서의 양지를 따와 1967년 3월에 창단하여 1970년 까지 운영되었던 축구단을 말합니다. 양지 축구단은 청와대 다음 가는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중앙정보부의 주도로 창단된 만큼 국내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곳이라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박정희 정권하에서는 모든 면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간주한 만큼 애국심을 강조하던 시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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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사변 뜻 차이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변의 사전적 정의는 한 나라가 상대국에 선전 포고도 없이 침입하는 일.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6.25는 북한의 일방적인 침입으로 시작된 전쟁 이기에 우리는 보통 6.25변으로 불러 왔으나 남북화해와 협력 분위기·북한의 UN가입 등에 따른 국제사회에서의 국가성 인정 등으로 국가간의 전투를 의미하는 전쟁이란 용어로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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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은 유정인데 왜 사명대사로 불리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법명인 유정보다 당호인 사명당으로 더 유명합니다. 오늘날에는 존경하는 뜻을 담아 사명대사(泗溟大師)라고 지칭할 때가 많습니다. 보통 법명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고 후세에는 당호로 불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효 대사의 경우에는 법명이 원효라서 원효대사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당호인 해동 법사, 고선 대사 라고도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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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영국간의 전쟁이었던 100년전쟁이라는게 실제로 그 기간이 정말 100년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년 전쟁은 사실 100년이 아니라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이라는 기간동안 잉글랜드 왕국의 플랜테저넷가와 프라스 왕국의 발루아가 사이에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를 놓고 일어난 일련의 분쟁 들을 총체적으로 부르는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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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애니메이션으로만 접했던 '광주학생운동'의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29년 광주고등보통학교를 비롯한 광주 학생들의 항일 기운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고 그러던 1929년 3월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 김몽길(金夢吉)·여도현(呂道鉉) 등이 교규 문란의 이유로 퇴학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이 사건으로 교내는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며 긴장이 계속되다가 광주학생동맹휴교 1주년이 되는 6월 26일 5학년을 비롯하여 2·3학년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하학하는 사태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한·일학생간의 대립은 1929년 10월 30일 오후 5시반경 광주발 통학열차가 나주에 도착하였을 때 폭발하였다고 합니다. 이날 나주역에서 통학생들이 집찰구로 걸어나올 때 일본인 학생 몇 명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3학년 학생 박기옥(朴己玉).이금자(李錦子).이광춘(李光春) 등의 댕기 머리를 잡아당기면서 모욕적인 발언과 조롱을 하였고 그때 역에서 같이 걸어나오고 있던 박기옥의 4촌 남동생이며 광주고등보통학교 2학년생인 박준채(朴準埰) 등이 격분하여 이들과 충돌하였다. 그때 출동한 역전 파출소 경찰은 일방적으로 일본인 학생을 편들며 박준채를 구타하였다.이에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인 최희선(崔熙善).김보섭(金普燮) 등 10여 명이 박준채와 합세하여 한·일학생간의 대결이 계속되었으나 더이상의 큰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러나 11월 1일의 광주역사건으로 사태는 급전되었다고 합니다. 당일 통학생도 아닌 일본인 중학 5학년 학생 4, 5명이 광주고등보통학교의 정세면(鄭世勉)에게 도전해 옴으로써 한·일학생간의 충돌 사건이 다시 일어났는데 양교의 교사들이 충돌 사건을 수습하기 위하여 현장에 왔으나 일본인 중학교 교사들은 중학생들을 오히려 선동하였으며, 교사끼리의 교섭도 일본인 중학교 교사들의 교만한 방언으로 옥신각신하다가 간신히 동시 퇴각을 결정하였다고 합니다. 그 뒤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이러한 사태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 학교로 돌아가 5학년 학생 노병주(盧秉柱)와 통학생 단장 채규호(蔡奎鎬) 등이 사실을 보고하고, 의견을 교환하였으나 묘안 없이 귀가하였고 11월 2일 하학 열차에는 양교 교사와 경찰이 동행하였으며, 아침에는 전라남도 지사가 양교 교장에게 통학생들에 대한 엄중한 감독을 지시했으나 그러나 이러한 일제의 형식적이며 관료적 차원에서의 수습책이 광주 학생들의 굳은 민족 의식에 기조를 둔 대일항쟁정신을 퇴화시키거나 변질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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