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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전투에서 이순신장군이 마지막으로 한말이 나의죽음을 적들에게 알리지말라.라고 하셨는데,그이유가 무엇때문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은 그의 특별한 정신과 사명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적들에게 자신의 죽임이 알려지면 역습을 받아 아군이 불리 해질까를 염려 했기 때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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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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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안지랑 곱창 골목에 역사에 대해서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구 안지랑 곱창 골목은 돼지 곱창 전문 골목으로 1979년 생겨나기 시작하여 1998년 IMF 이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영업을 시작한 업소가 생기면서 그 수가 늘어 났다고 하는데 2007년 20여억 원을 투자, 공영주차장을 조성하여 접근성을 높이고 위생 서비스에 투자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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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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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족이 어떻게 지중해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라틴족은 지중해와 페니키아인과 함께 세계 최초의 해양 제국을 건설했는데 이 민족은 혼자서 한것이 아니라 당시 지중해를 장악 했던 그리스 상인과 협력하며 지중해 패권을 확보 하게 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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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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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별순검 이라는 보직은 어떠한 보직 인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별순검(別巡檢)은 대한제국시대에 경찰직제의 하나로 경무청 또는 경부, 경위원에 소속되어 비밀정탐에 종사하던 관직이라고 합니다. 순검(巡檢) 중 특별히 제복을 입지 않고 황제 권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민심 동향을 정탐하고 국사범 수사 체포를 비롯한 경찰 업무에 종사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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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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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이 경복궁 중건을 피한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복궁은 조선의 통치와 정치가 이루어지는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광해군은 명나라의 풍수사 시문룡에게 경복궁을 보여주었으나 복원하지 않았는데 이는 풍수가 좋지 않다는 의견과 임진 왜란 후의 국가 제정궁핍으로 인한 비용 문제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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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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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게장은 우리나라에 언제부터 먹기시작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간장게장의 뿌리는 19세기 중반 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이때 간장의 사용이 확산되면서 간장 양념에 게를 넣어 발효시키는 방법이 시도되었는데 이 초기 간장게장은 주로 가정에서 손쉽게 만들어지는 형태였습니다. 20세기 초반 에는 간장게장이 점차 발전하며, 지역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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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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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 이름은 어떻게 지어지는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국왕의 호칭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대표 호칭은 묘호(廟號)였는데 묘호는 종묘에서 부르는 호칭이란 의미 입니다. 예컨대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등이 묘호였다. 이 묘호는 왕의 재임 시 업적에 대한 후세의 평가였다고 합니다. 묘호는 두 개의 글자로만 이루어졌다. 앞의 글자는 각각 다르지만, 뒤의 한 글자는 조(祖) 아니면 종(宗)으로 되어 있었는데 두 글자로 된 묘호는 철저하게 왕의 업적을 기준으로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이 묘호를 통하여 조선시대 사람들은 왕이 살아생전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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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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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대각간 김유신 장군이라는 명칭이 있던데 태대각산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 역사상 최상위 관등을 말합니다. 고구려의 대막리지 대가(大加) 같은 매우 높은 지위다. 현대의 계급과 굳이 비교하자면 대원수에 해당하는데 별칭으로는 '태대서발한(太大舒發翰)'이라 합니다. 사실 김유신 한 사람만을 위해 만들어진 거나 다름없는데 백제에 이어 고구려까지 멸망시키고 두 나라의 부흥세력들과 힘을 합쳐 당나라군까지 물리친 김유신의 공은 기존에 존재하는 관직으로는 치하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문무왕이 새로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명예 작위같은 것인데 생전에 태대각간 이었던 사람은 신라의 천 년 역사상 김유신 한 명뿐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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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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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백제, 신라인은 서로 말이 통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간에는 크게 의사 소통이 문제가 없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는 당시의 기록을 보면 신라의 첩자들이 고구려나 백제로 가서 첩보 활동을 했다고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의사 소통이 문제가 없었기에 이렇게 서로 첩보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삼국 간에는 의사 소통에 문제가 없다고 추정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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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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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최초에 라면은 무엇인지 역사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한 민국 최초의 라면은 삼양식품에서 1963년 출시한 ‘삼양라면’이었습니다. 당시 1봉지 가격은 10원이었다고 하는데 삼양식품의 전신인 삼양식품공업주식회사의 창업주 전중윤 명예회장이 식량난을 해소하기 위해 일본 묘조식품의 기술을 전수받아 출시했다고 전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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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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