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초등학교는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나라에 고등 학교 개념이 생긴 것은 일제 강점기인 1897년 입니다. 1897년 10월 10일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베어드(W. M. Baird) 박사가 평양 신양리 26번지 사택 사랑방에서 13명의 학생으로 개교을 해서 고등학교를 세웠는데 1901년 9월에 평양 신양리 39번지에 2층 한옥교사와 기숙사를 신축하여 이전하고 교명을 숭실학당(崇實學堂)으로 정하게 되고 이것이 최초의 한국 식 고등 학교가 됩니다. 지금은 서울 은평구 쪽에 이전해서 아직도 역사를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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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말하는 바이킹은 해적집단인가요? 나라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바이킹은 나라라기 보다는 노르디인 부족 민족체에 가까운 집단 입니다. 8세기 ~ 11세기 배를 타고 무역이나 약탈로 살아가던 노르드인 들을 통칭하는 용어인데 스칸디나비아 반도 와 유틀란드 반도 에 한정되어 살던 노르드인 들은 8세기 말부터 바깥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고 활동지역은 지중해와 흑해 등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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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지 발달론은 피아제가 인간의 인지 발달을 유기체와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파악한 이론이며, 심리학의 인지이론에 있어서 영향력 있는 이론이라고 합니다. 비고츠키와 유사성도 있으며 이론에 의하면 의하면 대부분 부모가 자식을 대충 교육하기 때문에 자식들은 부모의 도움이 없이도 스스로 복잡한 세상을 학습하여 이해할 수 있는 인지력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알아서 발달 시키게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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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시기에 북방민족의 국가가 늘어난이유?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송은 지나친 문치주의를 강화하고 중앙 집권적인 황제 독재 체제를 구축하였습니다. 또, 이 시대에는 과거 제도가 완성되어 진사 출신의 관료들이 우대되었지만 반면에 국방력의 약화와 북방 민족의 강성으로 거란족, 탕구트 족, 여진족의 침입을 받게 됩니다. 특히, 여진족의 침입으로 북송이 멸망하고 그 후 재건된 남송도 몽고 제국인 원에 의하여 멸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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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는 중국에서 독립이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티벳의 독립이 불가능한 이유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결정되었습니다. 중국이 절대 티베트를 포기 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물 부족 국가인 중국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 오는 수원지인 티베트를 포기 할 경우 더욱 더 물 부족 현상이 가속화 되기 때문 입니다. 이렇게 경제 적인 이유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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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지역 감정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나라 처럼 일본도 지역 감정이 있는데 대표적인 지역 감정으로는 도쿄를 중심으로 한 간토 (關東)지방과 오사카·교토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關西) 지방을 들 수 있다고 합니다. 도쿄 지역 사람들은 오사카 사람들을 거칠고 예의 없고 돈만 밝히는 장삿꾼 들이라고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오사카 쪽 사람들은 도쿄 사람에 대해 점잖은 척하고 깐깐하고 도도 하다 고 고깝게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양 지역 간 감정의 뿌리는 1600년 전 일본이 통일되기 전 동군과 서군으로 나눠 접전을 벌였던 세키가하라 전투 때까지 올라갈 정도로 뿌리가 깊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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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은 어떤 계기로 생기게 된 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노벨상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것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화학자이자 산업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그는 생전에 몇 번의 유언을 하였지만 마지막 유언은 그가 죽기 바로 전 해인 1895년 11월 27일 파리에 있는 스웨덴인-노르웨이인 클럽에서 쓰여 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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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서당도 그림 속에 보여지는 조선 후기의 특징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홍도의 < 서당> 에서는 양반과 상민이 같이 공부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짧은 옷차림을 한 왼쪽 아이들이 상민이고 긴 옷차림을 한 오른쪽 아이들이 양반인데 이렇게 조선 후기에는 양반과 상인이 같이 글공부를 하는 모습도 종종 보여 집니다.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는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물론 글공부는 양반들 차지였지만 김홍도가 살던 영·정조 시대부터는 달라지기 시작했고 장사를 해 부자가 된 상민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먹을 것이 해결되니 다음 순은 글공부해 실력을 키우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당시의 교육 방법에 대해서도 알수 있는데 맨 앞 한 녀석은 책을 등지고 돌아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습니다. 훈장님 책상 옆에는 회초리가 놓여있는데 매를 맞을 생각에 겁이난 것인지 훈장으로부터 막 매를 맞아 아파서 울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종아리를 맞으려고 댓님을 풀고 있는 것인지 훈장으로부터 방금 회초리를 맞아 댓님을 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숙제를 하지 않아 훈장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혼이 나고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예전에는 전날 배운 것을 다음 날 선생님 앞에서 외워야 했다고 합니다. 뒤로 돌아앉아 책을 보지 않고 다 외우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등을 돌리고 앉아 외운다고 해서 이것을 등돌릴 배(背), 외울 송(誦)자를 써서 '배송(背誦)'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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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나 사상가 정치가로 변신해 성공한 사례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의 가장 유명한 학자 이자 정치가로는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가 있습니다 두분다 조선 성리학의 기초를 세우는데 공을 세웠던 학자이자 또한 유명한 정치가로서 자신의 학문을 현실 정치에 적용 하고자 노력 했던 분들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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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역사보다가 피로인 에대해서 나오던데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피로인은 현대에서는 전쟁 포로 라고 보면 됩니다. 조선인으로서 이민족의 침략과 약탈 과정에 포로가 되어 강제로 끌려가거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같은 전쟁 와중에 역시 포로가 되어 끌려간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러한 피로인의 발생에 대하여 조선 조정은 일본 및 청나라와 외교적으로 접촉하여 그 일부를 쇄환해 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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