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 중에서 특이한 취미나 습관을 가진 왕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왕조에서 술담배를 좋아 했던 왕은 영조 일것으로 보입니다. 재위 7년째, 영조는 다시 한 번 금주령을 강화했다고 기록에 전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 영조는 술담배를 금하고 본인은 술 담배를 너무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70세 이상을 살았으니 영조는 체질 적으로 건강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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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무카는 왜 징기스칸과 사이가 틀어졌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자무카는 테무진의 세력이 급속하게 성장하자, 자무카는 그에게 위협을 느끼고 결별하게 된다고 합니다. 몽골비사에서는 자무카의 동생인 타이차르가 말을 훔치다 테무진의 부하인 조치 다르말라에게 사살되자 공격해왔다고 전해집니다. 그렇게 테무진과 자무카의 관계는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원수가 되었으며 몽골 고원의 패권을 둘러싼 거대한 전쟁이 시작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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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들은 트로트를 좋아하는데..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너무 씨끄럽거나 빠른 노래는 싫고 가사가 어느 정도 있으면서 의미가 있는 노래가 좋아 집니다. 요즘 노래는 사실 가사를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떄가 많지요. 트로트는 사람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그러한 한국인들의 정서를 살리면서도 가사를 통한 의미를 명확하게 부여 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40대-50이상의 어른들이 좋아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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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결 구성은 외국의 문학 작품에도 나타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외국의 문학 작품, 소설등에도 기승전결이 있지요. 다만 기승전결은 주로 한시에 있는 반면에 외국 소설등은 발단- 전개-위기-절정-결말 등으로 이루어 집니다. 이 다섯가지 단계에서 위기 정도만 따지면 아마도 기-승-전-결 정도의패턴과 유사하다고 보여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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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전쟁에서는 왜 공성전을 했던것일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성전을 굳이 한 이유는 예를 들어 임진 왜란 당시 일본군이 부산을 거쳐서 진주, 충주성 등을 안 거치고 바로 서울 한양으로 온다고 가정 합시다. 그럼 일본 군 입장에서는 시간 낭비도 안하고 더 좋겠지요. 하지만 진주성을 안털고 바로 서울로 가다가는 중주 쯤에서 진주성에서 보내 온 원군을 뒤 후방에서 급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즉, 앞에서는 중주성의 적군이 있고 뒤 후방에서는 진주성에서 보내 온 적군과 둘다 상대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일본군 입장에서는 앞뒤로 포위를 당해 승전의 가능성이 훨씬 떨어 지겠지요. 그래서 이러한 위험 요소를 제거 하고자 귀찮아도 하나 하나 공성전으로 성을 제거 해 나가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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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피커라는 단어는 어떻게 나오게 된건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체리 피커란 말도 있고 체리 슈머 라는 말도 있습니다. cheery picker 는 케익 위에 있는 체리만 쏙 빼 먹는 약간은 이기적인 사람을 말하고 cherry sumer 는 chrry + consumer ( 소비자) 가 합쳐져서 경제용어로서 소비를 할 때 본인이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소비를 하는 현명한 소비라를 의미 합니다. 체리 피커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많이 쓰는데 비해 체리 슈머는 비교적 중립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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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마지로(犬馬之勞) 라는 사자성어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견마지로(犬馬之勞)란 개나 말 정도의 하찮은 힘으로, 임금이나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을 비유하는 관용어로 쓰입니다. 같은 뜻을 지닌 한자어로는 '견마지성(犬馬之誠)' '견마지심(犬馬之心)'이 있습니다. 소설 “삼국지”에서 주인공 중의 두 사람, 유비와 제갈량. 삼고초려 (三顧草廬)를 통해 제갈량을 얻기 위해 몸소 그가 사는 초가집을 세 번 찾아갔다는 이 일화에 묻혀, (犬馬之勞)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고사성어인데 제갈량이 세 번 찾아온 유비에게 그의 부탁을 허락하면서 “견마지로 (犬馬之勞)”를 언급하면서 “대공께서 저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견마지로 (犬馬之勞)를 아끼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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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들의 여름휴가는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왕의 여름 휴가는 의외로 소박했다고 합니다. 사실상 휴가가 없었다고 하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피접 이라고 해서 병 치료를 위해 온천에 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장기간 궁궐을 벗어나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왕은 국가의 제사·의식을 관장하고 국정과 관련된 중대 사안을 신료들과 논의해야 했고 중요한 판결, 외교 문제도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사시사철 바쁜 일상을 보냈다고 합니다. 왕이 궁 밖으로 행차하면 수많은 군사와 신하들이 동행해야 했는데, 규모가 큰 만큼 비용도 무시 못했기 때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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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를 하게 된 역사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악수(握手)는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이후 맞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드는 의식적인 행위입니다. 대개는 만날 때, 헤어질 때, 축하할 때, 합의를 이끌어 냈을 때 행해 집니다. 악수는 선의를 보이기 위한 것이며, 과거 중세 시대 유럽에서 무기를 손에 쥐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행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래서 오른 손으로 하는 것 입니다. 주로 칼은 오른손으로 많이 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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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오삼계가 배신자로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나라 말 이자성의 난이 발생 했을 떄 오삼계는 중요한 성을 지키는 성주 였습니다. 하지만 한 여인으로 인해 성을 버리고 떠나서 결국 반란군에게 쉽게 성을 내주고 맙니다. 그래서 결국 명나라는 쉽게 망하게 되었고 오삼계는 여인때문에 나라를 버린 역적으로 중국 역사에 기록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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