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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의 철학사상이던 고증학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청나라의 고증학은 양명학의 폐단과 명나라의 멸망에 자극되어 경세(經世)를 위해서 실사(實事)에 기초해서 옳은 것을 구하는 것, 즉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내용으로 하는 실학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그 학문적 배경이 되는 경학(經學)과 사학(史學)에서 송명이학자들의 연구방법을 배척하고, 한 · 당나라의 훈고학(訓詁學)을 계승하여 실증적인 연구방법을 채택하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경학과 사학에서의 실증적인 연구방법이 발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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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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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 장군의 동북 9성의 위치는 정확히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북 9성은 서쪽 끝의 영주성(英州城)으로부터 동쪽으로 복주성(福州城), 공험진성 (公嶮鎭城), 길주성(吉州城), 평융진성(平戎鎭城), 통태진성(通泰鎭城), 웅주성(雄州城), 의주성(宜州城), 함주성(咸州城 함주대도독부) 순으로 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의 북경 동북쪽 대광정자산 북쪽을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지금의 서랍목륜하(시라무렌강) 남쪽 강변에 축성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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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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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는 어떤 역사적 배경 속에서 시작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르네상스는 15세기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르네상스는 '다시 태어 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봉건제의 영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중세 시대가 무너지고 신흥 상인 계급이 새롭게 떠오르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부를 쌓으며 교양도 같이 채우길 갈망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자들은 경험과 관찰에 기초한 과학적 방법을 정립하여 현대 과학, 예술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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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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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는 유럽 어느나라 음식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파스타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요리 인데 이탈리아의 풍부한 문화유산과 요리 혁신을 상징하며 전 세계 요리 환경에 스며들었는데 그 뿌리는 고대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파스타 제조 기술을 연마하여 이를 예술 형태로 승격시킨 것은 이탈리아인이었다고 합니다. 파스타의 명성은 다양성에 크게 기인하는데 300가지가 넘는 모양과 다양한 소스가 있어 어떤 취향이나 상황에도 잘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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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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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은 왜 강제로 고리대금업을 할 수 밖에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에 비해 고리대금업에 많이 종사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자’에 대한 상이한 관점 때문 입니다. 기독교는 이자가 시간의 대가로 주어진 것이므로 시간의 주인인 하나님께 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1179년 로마 교황청은 기독교인들이 공식적으로 대금업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하는 교서를 발표했다고 합니다. 반면 유대교는 동족이 아닌 이방인과의 거래에서 이자를 받는 것을 허용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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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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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결연의 유래와 형제결연 남매결연이라고 안하는 이유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보통 그 사람 혹은 국가의 뿌리를 나타낼 때는 어머니를 의미 하는 여성 명사 입니다. 그래서 모국 , 모국어 , 모태 신앙 등 여성 명사로 쓰게 됩니다. 그래서 자매 결연도 그러한 의미에서 쓰이게 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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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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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보물, 국보 등 지정은 어디에서 하나요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화재 보호법 제4조 (보물 · 국보의 지정) 제2항에 “문화관광부 장관은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 문화의 견지에서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문화재위원회 의 심의를 거쳐 국보로 지정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문화재보호법시행규칙’과 ‘국가지정문화재의 지정기준’에 구체적인 지정 기준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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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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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불출 의 유래가 궁금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두문불출 (杜門不出)이란 고사성어는 주로 사회의 일이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상황을 의미하는데 이 성어는 고려시대의 한 문장가인 이사춘 (李師春)의 일화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고 합니다. 이사춘은 문장력도 있고 능력도 있었지만 집에만 있었던 인물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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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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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신문고는 실제로 효과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셋째 임금이 된 태종은 대궐 밖에 신문고를 두도록 했는데 신문고는 백성이 분하고 답답한 일을 임금에게 하소연할 때마다 치게 한 북이었지만 실제로는 신문고의 이용은 주로 서울의 관리들에게만 한정되었으며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일반 상인(常人)이나 노비 또는 지방 관민에게는 효용이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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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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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은 왜 하얼빈을 택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직전에도 거사를 이틀 앞두고 우덕순과 함께 조린공원을 거닐면서 거사 계획을 검토했었다고 합니다. 그는 순국 전날도 동생을 만났을 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라는 유언을 남겼던 자리이기도 한데 하얼빈은 가는 곳마다 안 의사의 영웅정신을 담고 있었습니다. 특히 현재 안 의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하얼빈시조선민족예술관에 새로 세워진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나 자료들은 이곳을 찾는 한민족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첫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바로 안중근 의사의 삶과 숭고한 의거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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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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