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사태는 왜 중국에서 역사 교육을 시키지 않는건가여?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천안문 사태는 공산당의 정책에 인민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면서, 이를 군대의 무력으로 해결한 사건이었으며, 공산당의 무능을 감추려한 행동이었기에 지금 이러한 역사를 인민들에게 알려준다면 공산당이 잘못한 일이 있을 때 또다시 비슷한 저항이 벌어질 수 있으니 애초에 그러한 역사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죠. 선례가 있으면 후대에 참고할 수 있는 것이니 말이죠.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우리나라에 동묘가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 할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관우는 단순히 삼국시대를 휠쓸었던 장수가 아니라 지금까지 중국인들 마음 속에서 살아 있는 신이 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이 터졌던 조선시대에도 관우는 명나라군, 명나라 장수들에게도 전쟁의 신이었기에 조선에 파병되었던 장수들에 의해서 관우사당, 관우묘 등이 전국에 만들어졌습니다. 전쟁을 이기겠다는, 전쟁에서 이긴 것도 관우 장군 덕이라 생각했기에 명나라 황제는 조선에 관우사당을 짓도록 요구했고, 선조는 서울에 동묘, 서묘 등을 각각 설치하였고 동묘가 가장 규모가 컸고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5.0 (1)
응원하기
요즘 시대에 족보는 어떤 의미를 갖고있다고 볼수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사실 지금 시대에 족보는 큰 의미를 가지기 어렵게 생각합니다. 5촌, 6촌만 보더라도 이제는 명절 조차도 만나기 어려운 관계가 되었기에 촌수를 따지기 위해 족보를 보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으며, 우리 10대조 어른이 어떤 일을 했는지 등의, 또는 양반으로서 과거의 영광을 찾기 위한 조상을 확인하기 위한 행위 자체가 무의미하죠. 따라서 지금은 족보가 중요한 것이 아닌 현재의 가족,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신경 쓰고, 행복을 찾는 것이 족보에서 과거의 영광을 확인하고 가까운 친구보다 멀어진 친인척을 확인 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학자이면서 민족사관, 민족주의 등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역사를 대하는 생각 또한 자립적이며, 독립적이고, 우리를 침략한 외세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바른 정신을 가지며, 과거의 역사를 바르게 인식함으로써 정신적인 힘 또한 길러야 한다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질문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구를 말씀 하신적은 없는 것으로 보이죠. 허나 이 문구가 비록 신채호 선생께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신 것은 아니지만 이와 같은 맥락으로 여러차례 말씀하시고, 기록하신 것으로 보아 저 문구가 신채호 선생의 역사관과 맥락을 함께 하고 있기에 우리도 모르게 신채호 선생이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한 것 아닐까요.
평가
응원하기
과거엔 왜오랫동안 동서양엣 금이 아닌 은화가 주 화폐로 쓰였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지금도 그렇지만 금이 은 보다 절대적인 가치가 몇배나 높은데, 금광은 제한적으로 있기에 공급도 적으며, 강도가 무른 면 때문에 화폐로서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시장에 계란이나 식료품 등을 사러 가는데 금을 들고 가면 거래가 어렵죠. 하지만 은의 경우는 은광이 넓게 분포해 있으며 비교적 합금을 통해서 강도가 있기에 화폐 단위 등을 새기기에 적합했습니다. 또한 가치가 낮은 편이기 때문에 평상시 상거래 등에 있어서도 사용하기 편리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한국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서 혹시나 조금 더 우월한 뭔가가 있는 것 아닐까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남성은 남성끼리, 여성은 여성끼리 경쟁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남성, 여성 간 누가 더 우월한 것인가를 논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 생각이 됩니다. 각 분야에서 대한민국 남성이 잘하는 것이 있으며, 여성이 잘 하는 것이 있는 것이지 여성이 남성 보다 우월해서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교가 좀 어려운 것 같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고구려랑 백제는 동명왕 자손으로 뿌리가 같잖아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사실 권력이란 것이 부자 간에도 나누질 못하는 것인데 하물며 형제끼리, 그것도 엄청난 세월이 지난 후에는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되네요. 그 세월 동안 수없는 전투를 했고, 땅을 뺏고 빼앗겼던 과거가 있으니 통합, 통일은 어느 한쪽이 포기를 해야하는 일이었기에 어려운 일인 것이죠. 그러니 차라리 고구려가 확장을 해서 무력 통일을 했다라면 역사는 또 달라졌으리라 생각 됩니다.
평가
응원하기
임진왜란 당시에 일본 해전 수준은 낮았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일본의 해군도 약하지 않았었죠. 해적질, 노략질을 할 때에도 왜군의 해군은 강했으며 선박의 양, 질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왜군은 선박 자체에서 공격을 하기 보다는 적의 선박에 올라타서 육박전을 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었죠. 그래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목표로해서 상대방의 배에 빠르게 접근하는 전략이었는데, 우리의 성웅 이순신은 이를 대비해서 절대 배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화포를 이용하여 애초에 접근하기 전에 화포로 왜군을 침몰 시켜버렸죠.
채택 받은 답변
4.0 (1)
응원하기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단종 이야기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영화 내용을 들으시는 것 보다는 간략한 역사적인 스토리를 알고 가시는게 좋을듯 하네요. 세조에 의한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란이 일어난 것이 시작일 수 있습니다. 세조는 능력이 출중하고 주변사람에 대한 카리스마가 있는 그런 인물이었기에 어린 조카가 맡고 있는 왕위, 대신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왕위를 그냥 둘 수 없었죠. 그러던 중 여러 충복들과 함께 정적이었던 김종서를 제거하고 단종을 상왕으로 밀어냈죠. 그러고 여러 사건들을 빌미로 노산군으로 강등시키면서 영월로 유배를 보냅니다. 영화에서나 유배지에서나 주요 무대는 청령포였구요. 지금도 청령포에 가면 배를 타고 유배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홍수가 나서 청령포를 떠나서 영월 관아로 이동하고 나서 결국 머지 않아 죽임을 당하게 되는 과정 중의 이야기가 지금의 영화에서 큰 틀을 갖고 있을거에요.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입춘대길이라는 말이 임진왜란 때 나왔고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말이라던데 어떻게 나온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입춘대길, 건양다경 같은 문구를 써서 문에 붙이기 시작한 것은 조선초 부터 성종대에 시작된 것으로 확인이 되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때의 설화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왜군에 의해 침략당한 사실을 희화화 해서 왜군을 우스운 대상으로 만든 것이죠. 임진왜란이란 사건을 연결하여 여러가지 이야기를 만든 것의 하나로 보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