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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기태 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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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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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3일 작성 됨
Q.
조선 왕중에 가장 후사가 많은 왕은 어느 왕이죠?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3대 왕인 태종으로 12남 17녀로 29명으로 조선시대 왕들 중 가장 많은 자식을 두었습니다. 다음으로는 태종의 아들이자 4대 왕인 세종이 18남 4녀로 22명을 두었습니다.
역사
2024년 1월 3일 작성 됨
Q.
삼국지에서 조자룡이 어디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느 군주에게 임관하나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후한 말의 인물로 삼국시대 촉한의 무장입니다. 기주 상산 진정 사람으로 자는 자룡입니다. 굳세고 용맹하여 맹장으로서 공훈을 세우고 위명을 떨쳤으며 진수는 유비의 조아라는 높은 평가를 내렸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주군에 충언을 하거나 목숨을 걸고 주군의 가족을 보호하는 등 충성심도 대단한 장수였습니다. 조운의 별칭인 호위장군은 호랑이 같은 기세를 떨치는 장군이라는 의미입니다. 원소가 책략을 이용하여 한복에게서 기주를 빼앗자 무리를 끌고 공손찬 휘하로 들어갔습니다. 유비도 공손찬에게 의탁하고 있을 때였는데 유비의 인품에 반하여 유비를 따르게 됩니다. 유비가 조조군에 쫓겨 당항 장판에서 처자를 버리고 달아나자 조운이 유선과 감부인을 보호하여 모두 위난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아문장군에 올랐습니다. 유비가 촉으로 돌아갈 때 조운은 형주에 남았습니다.
역사
2024년 1월 3일 작성 됨
Q.
시마즈 요시히로는 어떤 인물이었는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597년 정유재란으로 15만 일본군이 또다시 조선을 침략해왔으나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조명연합군은 곳곳에서 일본군을 무찔렀고 때마침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일본군 수뇌부는 큰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결국 철수하기로 결정하고 순천 사천 울산으로 집결합니다. 조명연합군은 순천왜성을 공격하여 큰 피해를 입히고 고니시 유기나와 부대를 고립시킵니다. 이도저도 못한 상황에 처한데다 보급로마저 차단 당한 고니시를 구하기 위해 사천과 고성에 있던 시마즈 요시히로가 구하러 올 것을 예상한 이순신과 조명연합군 잠복해 있다가 500척을 이끌고 오던 시마즈함대를 공격하여 200척을 침몰시키고 150여척을 반파시켰으며 150척은 도망가기에 급급사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병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북을 치는 등 사기를 진작시키다가 적의 총탄에 쓰러지게 됩니다. 시마즈는 노량해전의 일본측 지휘관으로 남원성 공격 당시 심당길 등 80여명의 도공을 일본으로 강제연행하여 한국에서도 악명이 높았습니다.
역사
2024년 1월 3일 작성 됨
Q.
여순사건은 언제 일어났고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나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제주도 4.3민중항쟁을 폭동이라고 규정하고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 제14연대를 제주도로 보내 진압하고자 했으나 14연대장은 깡패와 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역설하면서 오히려 이승만과 미군을 향해 공격을 감행하다가 미군의 강력한 화력에 막혀 뿔뿔히 흩어지면서 반체제 인사들과 사회주의자 노동자 식모와 머슴 등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지리산과 태백산맥을 거점으로 활동하게 된 빨치산(남부군)이 됩니다. 토벌대에 의해 총맞아 죽고 얼어죽고 굶어죽은 숫자가 2만여 명에 달합니다.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제인 진달래제를 해마다 진행해왔었는데 진달래가 북한의 국화(지금은 목란)였기 때문에 철쭉제로 바꿔서 진행되어 오고 있습니다.
역사
2024년 1월 3일 작성 됨
Q.
1948년 10.19 사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세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여순 순천 국군반란사건으로 명명되었던 1948년 10월 19일 사건은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 제14연대를 제주도 4.3사건으로 촉발된 민중항쟁 진압명령을 내렸으나 14연대장은 깡패와 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들면서 명령을 거부하고 오히려 이승만과 미군을 향해 공격을 하다가 미군의 강력한 무기에 당해내지 못하고 그당시 사회주의자 반체제인사들 노동자들과 식모와 머슴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규합하여 지리산과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활동한 빨치산(남부군)이 됩니다. 이후 토벌대에 의해 총맞아 죽고 얼어죽고 굶어죽은 숫자가 2만 여명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지리산에서는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진달래제를 지내왔으나 진달래가 북한의 국화(지금은 목란)였기 때문에 철쭉제로 바꿔서 위령제를 지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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