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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정님 전문가입니다.

안녕하세요 김정님 전문가입니다.

김정님 전문가
Q.  기독교에서 장로교와 침례교, 감리교의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정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독교에는 여러가지 종파가 있습니다. 교파들의 본질은 거의 같지만 해석학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가장 큰 차이는 장로교는 칼빈주의이고침례교와 감리교는 알미니안주의라는 것입니다.장로교는 하나님의 주권을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것이고, 침례교와 감리교는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다 성경에 나타나 있기 때문에 둘 다를 포함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중에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가 각기 강조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이런 강조점이 -신자가 구원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구체적인 질문과 연결되면* 장로교는 칼뱅의 신학과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성립한 그리스도교의 개신교파로 진정으로 거듭난 신자는 구원을 상실할수 없다고 가르칩니다.장로교는 신약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감독, 목사,장로를 같은 직책으로 해석합니다.* 감리교는 18세기 초 영국의 웨슬리가 제창하여, 교리보다 사랑의 실천에 중점을 두고 감리사와 감독을 두어 교회를 다스리게 하였고, 진정으로 구원된 신자라도 사랑의 실천을 다하지 않을 경우 구원을 상실할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침례교는 지각적인 신앙고백에 기초한 침례를 시행하는 그리스도교 프로테스탄트의 한 교파로 신약성서의 내용처럼 신앙고백을 한 사람들에게만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유아 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개인의 결심을 주장하는 침례교는 성서원리, 침례, 만인사제, 각 교회의 독립과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강조하기 때문에, 구원을 상실할수 없다라고 가르치기도 하고, 구원을 상실할수 있다고도 가르칩니다.
Q.  순조는 어떤임금이었나요?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정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순조는 조선후기 제23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1800년~1834년으로,정조가 승하하자 11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했으며, 대왕대비 정순황후가 수렴청정을 했습니다.정순황후는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길을 열어 정조대의 개혁정치를 일거에 무너뜨렸습니다. 정순황후는 정조때부터 집권해온 시파에게 보복하기 위해 사교금합 명분으로 200여명의 천주교신자들을 학살한 신유박해때 시파를 모두 숙청하였고 정순황후가 물러나고 순조가 친정을 시작하고도 천주교 탄압은 계속되며, 을해박해로 경상.충청.강원도.전라도의 천주교 신자들과 교민들을 대거 학살하고 혹독한 탄압을 했습니다.순조의 친정 뒤에는 안동김씨의 제도정치가 확립이 되었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으며, 각종 비기와 창설이 유행하는등 사회혼란이 일어났습니다.이를 틈타 1811년 홍경래의 난을 비롯해 민란, 흉서사건, 모반운동, 괘서사건이 일어났습니다.1821년에는 서부지방에 전염병이 번져 10만여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이렇게 순조 재위 34년 중 19년에 걸쳐 수재가 일어나는등 크고 작은 천재지변이 잇달아 발생했다고 했습니다.순조는 안동김씨를 견제하려 풍양조씨를 끌어 들였으나 결국 실패하였습니다.
Q.  문무대왕은 왜 무덤이 없나요?
안녕하세요. 김정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무대왕릉(대왕암)은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수중릉으로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해안에서 약 200m 떨어진 바닷속에 있습니다.고려시대 김부식이 지은 역사책인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설화에 따르면 - 문무왕은 자신이 죽은후 화장하여 동해에 묻어달란 유언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하면 자신은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아들 신문왕은 동해의 큰 바윗돌에 장사를 지냈고 그 바윗돌을 대왕암이라고 불렀으며 근처에 감은사를 세워 불교의 힘으로 왜구의 침략을 막으려 했습니다.
Q.  연산군이라 묘호가 붙은 이유를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김정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군이란 칭호는 쉽게 왕과 중전 사이에 태어난 적자 왕자들에게 붙는 칭호이고요. 서자인 후궁들 사이에 태어난 왕자들에겐 군이란 칭호가 붙습니다.조선시대 왕의 묘호에 처음 나라를 세운 왕에겐 조가 (태조), 국난을 극복하고 반정을 한 6명의 왕에게도 조의 묘호가,국가를 안정시키고 이어나간 왕에겐 종의 묘호가 붙습니다.그중 서자출신의 광혜군은 폐위되어 묘호조차 얻지 못한 왕이고요.연산군은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폭정과 많은 신하를 죽이고, 할머니까지 돌아가시게 한 결과 중종반정으로 인해 폐위되고 호칭도 대군이 아닌 군의 호칭으로 강등되어 버린 것입니다.노산군 엮시 폐위되어 대군에서 군으로 강등 되었으나 훗날 숙종때 단종으로 복권 되었다고 합니다.
Q.  피타고라스 정의를 피타고라스 본인이 한 정확한 증거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김정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가 처음으로 증명했다고 하여 피타고라스의 정리라고 합니다. 피타고라스는 이 정리를 발견한후 기쁨에 가득차 신에게 감사의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까지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자연의 비, 즉 분수로는 표현할수 없는 무리수의 존재가 증명되어 종교단체 수준의 피타고라스 학파가 혼란에 빠져 세상은 유리수로만 이루어졌다는 진리에 어긋났다는 이유로 함구하고, 신의실수로 만들어졌으며 없는 수로 취급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후에 제자들이 세상에 알리려다 참수를 당하거나 수장을 당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 노력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저희가 배우고 있는 피타고라스의 정의가 있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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