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김좌진 장군은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나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김좌진장군은 김두한의 친아버지로도 유명한데, 가장 유명한 전투적 성과는 청산리 전투입니다.김좌진장군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지는ㄴ데,1929년 한족총연합회 등을 창설하고 활동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배제하고 항렬이 같은 아우뻘인 김종진 등 아나키스트들을 받아들였는데, 이에 공산주의자 박상실에게 길림성에서1930년 1월 24일 암살당했다고 합니다.
Q. 절치부심이라는 고사성어의 의미와 유래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절치부심은 몹시 분해서 이를 갈고 마음을 썩힘을 뜻하는 말로, 매우 분하여 복수심으로 이를 갈며 벼르는 모습을 뜻입니다.기사에 따르면 다음의 일화가 있습니다.‘절치부심’은 중국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의 자객열전(刺客列傳)에서 유래했는데, ‘이를 갈며 팔장을 끼고 고심한다’는 ‘절치액완(切齒扼腕)’이라고도 한다. 중국의 전국시대, 진(秦)나라에 번어기(樊於期)라는 장수가 있었다.그는 정왕(政王:훗날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의 노여움을 사, 연(燕)나라로 도망갔다.이에 분노한 정왕은 번어기의 부모와 그의 가족 모두를 죽였다. 또한 정왕은 번어기를 잡기 위해 많은 현상금을 걸었다.연나라로 도망쳐 온, 번어기는 자기 부모와 가족들을 죽인 정왕에게 복수하고자 온갖 궁리를 했지만, 원수를 갚기 위한 뽀족한 수가 없던차에, 마침 형가(荊軻)라는 사람이 찾아와 이런 제의를 했다.“장군의 목을 내게 주면 정왕을 찾아가 목을 바치고 신임을 얻은 후, 원수를 대신 갚아 주겠습니다.” 라고 하였다.더 나아가,결국 진나라의 정왕은 살인당하지 않고 '진시황'으로서 더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