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우리나라 왕의 이름뒤에 붙는건..?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ㅇ조, ㅇ종으로 끝나는 것은 임금이 죽은 뒤 종묘에 모실때 사용된 묘호를 말합니다.자료에 따르면 '조'와 '종은 다음과 같이 붙여졌다고 합니다.조나 종을 쓰는 데는 꼭 일정한 원칙이 있었던 것은 아니나, 대체로 조는 나라를 처음 일으킨 왕이나 국통(國統), 즉 나라의 정통이 중단되었던 것을 다시 일으킨 왕에게 쓰고, 종은 왕위를 정통으로 계승한 왕에게 붙였다. 이와 같이 조가 창업이나 중흥의 공업(功業)을 남긴 왕에게 붙인다는 원칙 때문에, 은연중 종보다 조가 격이 더 높다는 관념을 낳게 하였다. 조선조에 있어서 조의 묘호가 많은 까닭도 이러한 관념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묘호(廟號))]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8910
Q.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매년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의 과거시험은 정기시와 부정기시로 나눠져있으며, 정기시는 3년에 한번 열렸다고 합니다.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조선시대 과거에는 소과·문과·무과·잡과의 네 종류가 있었으며, 또한 정기시(定期試)와 부정기시(不定期試)의 구분이 있었다.정기시는 3년에 한 번 열린 식년시 하나밖에 없었으나, 수시로 열린 부정기시는 증광시(增廣試)·별시(別試)·알성시(謁聖試)·정시(庭試)·춘당대시(春塘臺試) 등이 있었다. 이 중 식년시와 증광시는 소과·문과·무과·잡과가 모두 열렸으나, 별시·알성시·정시·춘당대시는 문과와 무과만이 열렸다.시험 시기는 식년시를 예로 들면 처음에는 모든 시험을 식년(子·卯·午·酉) 정월에서 5월 사이에 거행하였다. 이로 인하여 향시인 초시에 합격한 자들이 서울에 올라와 복시에 응시하는 데 기간이 촉박하였고, 또 농번기에 수험생들의 왕래가 빈번하여 농사에 방해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리하여 1472년(성종 3) 초시를 식년 전해인 상식년(上式年) 가을에, 복시를 식년 봄에 거행하기로 하였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거(科擧))]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45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