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조선시대에 지방의 사립 교육 기관으로 높은 수준의 학문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서원은 그 당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자료에 따르면 서원은 강학과 학문연구(藏修), 선현제향의 기능을 지니면서, 성리학의 발전을 촉진시키고 지역의 교육, 문화, 지성사의 수준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 지성과 인문학의 전당이었다고 합니다.https://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nttId=76044&bbsId=BBSMSTR_1008&pageIndex=1&pageUnit=10&searchtitle=title&searchcont=&searchkey=&searchwriter=&searchdept=&searchWrd=&searchCnd=&ctgryLrcls=&ctgryMdcls=&ctgrySmcls=&ntcStartDt=&ntcEndDt=&mn=NS_01_09_01서원은 유학의 성현들을 모시는 사당 또는 사묘의 역할, 향약 등의 향촌 질서를 정하고 백성들을 계도하는 역할, 단순한 교육이 아닌 학문 연구와 발전의 기능을 하는 연구소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합니다.
Q. 신라시대 화랑의 기원과 주요활동은?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자료에 따르면 화랑의 구성과 활동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존재합니다.화랑도, 즉 화랑과 그를 따르는 무리가 한 시기에 몇 개나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7개 이상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신라 전 시기에 걸쳐 화랑이 모두 2백여 명이나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그 구성을 보면 먼저 화랑은 귀족 자제 중에 아름다운 이를 뽑아 삼았으며, 자발적으로 그를 따르는 무리가 낭도가 되었다. 낭도의 신분에 대해서는 왕경 지역의 평민까지 포함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화랑도에는 불교 승려들의 관련성도 보이는데,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이 원광법사(圓光法師)에게 세속 5계를 받았다든지, 월명사(月明師)가 기파랑(耆婆郞)을 찬하는 향가를 지었다든지 하는 것이 그러한 사례이다. 화랑도의 명적을 풍류 황권(風流黃券) 또는 황권이라고 하였는데 승려도 여기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화랑도의 일상적 활동은 수련과 가악, 그리고 유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이들이 도의(道義)로써 서로 연마하고 혹은 가악(歌樂)으로 서로 즐겼으며, 산과 물을 찾아 노닐고 즐기니 멀리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하였다. 죽지랑(竹旨郞)의 낭도 득오(得烏)는 풍류 황권에 이름을 올려 놓고 매일 출근하였다고 하였는데, 이처럼 일정하게 모여서 수련을 하였을 것이다.화랑도가 연마한 도의에 대하여 최치원(崔致遠)은 난랑비(鸞郞碑) 서문에서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어 이것을 ‘풍류(風流)’라고 하는데, 그것은 3교(三敎)를 포함한다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유교의 가르침으로는 ‘들어오면 집에서 효를 행하고 나가면 나라에 충성함[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도교의 가르침으로는 ‘무위의 일을 하고 불언의 가르침을 행함[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불교의 가르침으로는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듦[諸惡莫作諸善奉行]을 들고 있다. 이는 원광법사가 귀산과 추항에게 전했다고 하는 세속 5계와 상통하는 바가 있다. 세속 5계는 잘 알려진 대로 ‘임금 섬기기를 충으로써 할 것[事君以忠]’, ‘어버이 섬기기를 효로써 할 것[事親以孝]’, ‘친구 사귀기를 신으로써 할 것[交友以信]’, ‘전쟁에 나가서는 물러서지 말 것[臨戰無退]’, ‘생명 있는 것을 죽일 때 가려서 할 것[殺生有擇]’을 말한다.1934년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금장리에서 발견된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에는 두 사람이 충도(忠道)를 집지하고 큰 과오가 없기를 맹세하였는데 이 역시 화랑도의 수련 전통과 통하는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o100500&code=kc_age_10
Q. 최무선이 만든 신무기의 이름은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최무선은 화약제조술을 보급하고, 이를 통해 총포류로는 대장군포(大將軍砲), 장군포(二將軍砲), 삼장군포(三將軍砲), 육화석포(六花石砲), 화포(火砲), 신포(信砲), 화통(火㷁) 등이, 발사물로는 화전(火箭), 철령전(鐵翎箭), 피령전(皮翎箭), 철탄자(鐵彈子), 천산오룡전(穿山五龍箭) 등이 있었고, 그밖에도 폭탄의 일종인 질려포(蒺藜砲), 로켓병기의 일종인 유화(流火), 주화(走火), 촉천화(觸天火) 등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n205000&code=kc_age_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