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일본 역사서에 이주갑인상은 왜 발생하는 것입니까?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국 사서에는 266년 ~ 413년을 왜와 접촉한 기록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후 왜는 478년까지 활발히 중국과 교류하다 502년 양나라에서 관직을 받았다는 기록을 마지막으로 다시 100여 년간 중국 역사속에서 사라집니다.그나마 6세기 일본서 기록은 5세기 후반 이래 역사 기록이 있음이 확인되고 신빙성이 나름 괜찮아지며 삼국사기 등과 교점이 많아 보여 6세기 일본사는 3세기 후반~ 4세기 만큼 오리무중은 아닙니다.5세기 후반 이후 봉직을 받고자 왜가 조공하는 기록이 없음을 두고 , 5세기 후반 이후 역사 편찬 사업을 시작했음을 두고 케이타이 덴노 세력이 정변을 통해 구 왕실을 축출했다고 보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3세기 후반과 4세기의 일본 열도에 대해 비슷한 추론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한가지 원인 추론입니다.2세기 후반부터 3세기 후반까지의 일본은 히미코와 토요의 통치 아래 안정된 상태였으나 그 전과 중간에 전쟁으로 인해 어지러웠던 시기가 존재하고 왕 또한 여러 국가들의 합의로 함께 세워졌으니 이 균형이 깨지면서 연맹 왕권은 쉽게 분열될 가능성이 있는데 3세기 후반 아마 그런 상황이 실제화 된듯하며 이후 일본 열도는 다수의 국가가 병존하는 상황에 접어들었을 터 , 조공함으로써 중국 사서에 이름을 남길 왕권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이 결과 종합적인 역사 기록을 남길 주체가 없었을 것이고 문자가 없었다고 하는 삼국지 동이전과 수서의 기록을 보면 그 전부터 역사 기록을 남길수없습니다.왜국에서 역사를 기록하고자 했을 때 3세기 후반~ 4세기, 5세기까지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그 이전까지는 구전기록을 종합해 그 이후 한동안은 120년을 끌어올려 어느정도 균등한 역사기록을 분배했을 것입니다.다만 이때 일본 열도의 권력이 마냥 분열된 상태에 놓여있었는지가 의문,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 따르면 266년~ 413년 공백기 사이에도 왜국은 신라와 활발히 전쟁을 벌이고 혼인을 맺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서기 편찬자들은 모종의 이유로 이 시기 등장하는 왜국을 역사속에서 지워버리고 오진 덴노부터 다시 역사를 복원 한 것 같은데 이유는 알수없습니다. 만약 오진 덴노부터 공백기를 넘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라면 진구 황후기 말년 딸린 역사 기록은 또 누구의 것인지 알수 없으니 이부분은 현재 새로운 사료가 나타나지 않는 한 추측의 영역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