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왜 역사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의 역사는 유대인들이 고국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하자는 시오니즘 운동에서 시작합니다. 이운동으로 유럽에 흩어져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아랍인들의 반발을 샀고, 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전쟁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시오니즘을 지지함과 동시에 아랍인들의 협력을 요청, 양자 모두에게 팔레스타인을 내주겠다는 약속을 함으로 전쟁의 불씨를 만들었습니다.아랍측에 대해 맥마흔 선언, 유대인 측에 벨푸어선언을 했습니다.
Q. 화장지의 역사에 대해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천 등으로 만든 손수건이 대부분이던 시대 , 세계 최초의 일회용 티슈를 발명한 사람은 독일 괴핑겐에 종이공장을 소유했던 구스타프 크룸으로, 1894년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이 일회용 티슈는 펄프로 만든 매우 얇은 종이에 글리세린을 도포해 내구성을 높이고 부드럽게 만든 것으로 그로부터 35년 뒤 1929년 뉘른베르크 종이공장 조합이 크룸의 발명을 계승해 순수한 펄프로 만든 최초의 티슈라는 제목으로 상표권을 등록합니다.미국의 킴벌리-클라크사도 비슷한 시기 자체적으로 개발,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에 참전 중이던 미국은 붕대나 거즈 등의 군수 물자가 부족했는데 이에 킴벌리-클라크사는 20세기 초반 셀루코튼 이라는 물질을 개발, 펄프를 이용해 면직물처럼 만든것으로 면보다 흡수력이 5배 높은 물질로 붕대의 대용으로 쓰기 알맞았습니다.이 물건은 흡수력이 좋아 한번 쓰고 버리기에도 부담이 없어 야전병원에서 많이 사용, 또 이 셀루코튼은 전쟁 중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독일이 이때 독가스를 개발하자 미군은 방독면을 썼는데, 방독면의 필터에 이 셀루코튼을 사용했습니다.1918년 전쟁이 끝나자 셀루코튼의 재고가 넘쳐 이에 킴벌리-클라크사는 민수용으로 활용할 방안을 생각하게 되며 1924년 크리넥스 티슈라는 상표명을 등록해 1회용 화장지라는 컨셉으로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인도의 경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다 휴지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Q.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국기는 왜이리 서로 비슷한 모습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형제국가, 쌍둥이 국가로 호주와 뉴질랜드의 안작동맹처럼 혈맹으로 묶여있습니다.우루과이의 국기도 독립쟁취에 도움을 준 아르헨티나에게 감사하다는 뜻으로 아르헨티나의 국기에 있는 5월의 태양을 본떠 만들었습니다.우루과이는 처음에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고 이때는 우루과이가 현재 옆 나라인 아르헨티나와 리오 데 라 플라타 라는 부왕령을 구성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이 부왕령은 현재의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볼리비아, 파라과이를 아우르는 넓은 영토를 자랑했는데 1810년 현재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난 기점으로 스페인령 남미 식민지들이 하나둘씩 스페인에 저항, 결국 우루과이가 1811년 잠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게 됩니다.1820년 , 포르투갈 예하 브라질군이 현재 우루과이를 포함한 지역인 반디 오리엔탈을 침공, 이곳은 브라질 제국을 구성하는 주인 시스플라티나주로 강제 합병되는데, 이에 아르헨티나는 본래 자신과 같은 역사를 공유했던 지역을 되찾고자 브라질과 전쟁, 이 과정에서 아르헨티나는 우루과이의 망명 장교 및 주요 독립운동가 33인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결국 1828년 영국이 두 나라를 중재, 우루과이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완충지대이자 완전한 독립국으로 만드는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현재의 우루과이로 재출발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