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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유의 확장 예술 향유를 통해 인생폭을 넓혀봐요

안녕하세요 사유의 확장 예술 향유를 통해 인생폭을 넓혀봐요

신현영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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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절미 라는 말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 졌나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인절미 쫄깃쫄깃하고 고소해서 저도 좋아하는 음식입니다.이 말의 단어의 유래로 알려져 있는 얘기는 조선시대에 인조가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괄의 난으로 인해 인조가 충남 공주로 피난을 갔었을때 임씨집안에서 머물렀다고 합니다. 임씨가 인조에게 음식을 진상에 올린 것들중 콩고물을 묻힌 떡을 인조가 매우 맛있게 먹었고, 인조가 이름을 물었을때 특별한 이름을 붙이지 않던 떡이어서 대답을 하지 못하자 인조가 "매우 절미(絶味)로다" 하고 감탄하며 이름을 붙였던것에 유래가 된것입니다. 임씨가 올린 절미라고 하여 임절미로 불리다가 후에 인절미가 된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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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리가 사용하는 연필의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현대 연필은 1795년에 니콜라스-자크 콘테라는 과학자에 의해 발명되었습니다.콘테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군대에 복무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는데요. 그가 발명한 연필은 흑연이라는 순수한 탄소로 만들어졌으며, 이 재료는 무언가 필기하기 위한 목적에 아주 적합했습니다. 흑연은 1789년에 유럽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납의 한 형태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연필은 처음에는 '납' 또는 '흑'이라고 부른것 같습니다. 1795년부터 연필은 "흑연"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으며, 그리스어로 "쓰다"를 의미하는 "graphein"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연필이라는 단어는 중세 시대에 작은 잉크 브러시를 의미하는 라틴어 "pencillus"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는 "작은 꼬리"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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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구려 신라 백제와 같은 삼국시대에도 화재가 발생했을때 화재진압을 해주는 소방서가 존재하였을까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신라 및 백제에서 현대의 소방서와 같은 역할을 한 기관이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는것 같습니다. 아마도 각 나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화재 예방 및 대처에 주의를 기울였는데요.고구려의 경우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화재를 끄기 위해 물을 사용했습니다. 고구려의 건물은 일반적으로 나무와 풀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물을 통해 불길을 진압하고 진화시키는 방식을 채용했던것으로 보입니다. 신라에서는 돌벽이나 돌담을 지은것으로 보아 돌을 통해 화재의 확산을 막고 물을 사용했으리라 추측합니다. 백제에서는 불을 막기 위해 나무로 만든 장벽이나 장치를 설치하여 화재의 확산을 제어하며 물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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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국역사에서 처음으로 정치를 한 여성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맞습니다. 한국 역사상 조선시대 이후로 유교사상이 매우 뿌리깊게 들어오면서 남존여비사상이 오랜동안 지속되어 왔습니다. 그 여파로 나라의 주요 요직에 여성이 자리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는데요. 한국 역사상 첫 여성 정치인은 박영희입니다. 박영희는 1948년 대한민국 제1회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대한민국 역사상 첫 여성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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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저희나라 역사속 왕중에서 왜 세종대왕 및 광개토대왕에게만 왜 대왕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볼때 역대 왕들을 지칭하면서 때로는 그냥 왕이라고 하고 때로는 대왕이라는 명칭을 붙이는데요. 그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광개토대왕의 경우 중국 중원의 나라와 북방의 나라들의 왕들을 다스리는 왕 중의 왕을 의미하는 대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한국사에서 광개토 대황처럼 많은 곳을 통치하고 통일을 이룬 위대한 군주가 드물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또한 세종대왕은 조선시대의 4대 군주 중 한 사람으로, 한글을 창제하고 학문과 문화를 발전시킨 업적으로 인해 대왕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세종대왕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한글이 아닌 타국의 글을 쓰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광개토대왕과 세종대왕은 각자의 업적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대왕이라는 명칭이 주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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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미술사에 관한 책을 알려줄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처음 미술사를 접했을때 교과서와도 같다고 알려진 매우 유명한 필독서가 있습니다.[ E.H 곰브리치 서양 미술사 ] 인데요. 미술대학교에 갔었을때 1학년때 교양서적이었습니다. E. H.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책으로, 서양 미술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림과 사진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어서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교재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이 책은 서양 미술에 대해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추천되는 책입니다. 여기서 서양 미술의 발전 과정과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많은 그림과 사진이 수록되어 있어서 시각적으로도 매우 풍부하고 매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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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성리학의 수용으로 인한 사상계는 어떤 전환을 가져왔는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시대에는 주자성리학의 수용으로 인해 실천적인 기능이 강조되었고, 이로 인해 사상계에서는 불교계와 유교계의 융합과 조화가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고려사회에 영향을 미쳤으며, 무신란 이후에는 대신불교계에서의 심성화와 유, 불의 융합이 무신란 이후 고려사상계의 새로운 조류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이후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이 독자적으로 발전하면서 사회 전반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성리학은 조선시대의 사회 체제와 국가 체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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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과거에 팬티를 입기 시작한 시점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속옷의 진화는 가장 초창기 사회인 고대 로마와 이집트의 시기인 기원전 753년부터 서기 476년부터 살펴볼 수 있습니다.고대 이집트에서는 낮은 계층의 여성들은 더위 때문에 속옷을 거의 입지 않았습니다. 고대 이집트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흔한 의복은 칼라시리스라고 불리는 단순한 린넨 튜닉이었습니다. 이 튜닉은 속옷, 겉옷 또는 들보와 비슷한 역할을 하며 독립적으로 착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유한 여성들은 속옷을 입고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의 "튜니카"나 "스트로피움"과 유사한 형태의 의복을 착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19세기인 1841년까지 속옷은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drawers, knickers, smalls, breeches 등이 있었습니다. 19세기의 속옷은 옷의 각 다리가 무릎 길이로 설계되어 실제로 한 켤레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또한, 그 시대에는 가랑이가 열린 헐렁한 속옷 디자인이 많이 판매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팬티셔츠, 페티코트, 슈미즈, 드레스 등을 입은 상태에서는 팬티를 내리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빅토리아 시대의 유행과 같은 이유로). 그래서 가랑이가 열린 속옷은 여성들이 화장실을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아마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팬티를 입기 시작한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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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시대에도 지금 현재처럼 호텔과 같은 숙박시설이 존재하였는지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재밌는 질문이네요. 조선시대에는 호텔정도와 맞아떨어지는 개념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대한제국이 들어서면서 1914년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를 방문하기 위해 조선을 찾는 내외국인을 위한 숙박 편의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에 철도호텔을 건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총독부와 경성역의 중간지점에 위치했던 조선호텔은 1914년 9월에 완공되어 같은 해 10월 10일 개관하였습니다. 하지만 완전 호텔같은 개념은 아니지만 그래도 숙박을 할수 있었던 시설을 생각해보면 조선시대에 주막이나 여각 같은곳에서 숙박은 가능했습니다. 주막은 술집과 함께 숙박할수 있었고 여각은 여인들이 운영하는 숙박시설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환경이 불결하고 불편했기에 양반이나 귀족들에게는 이용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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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세계적으로 엘리뇨 현상을 전망하고 확인한 역사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엘니뇨 현상은 남아메리카 페루의 '난바다'인 동태평양 적도에서 해수면의 고온 상태가 지속되는 현상을 말합니다.엘니뇨 현상은 1600년대 페루 해안가 어부들에 의해 처음 관찰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 현상에 대해 스페인어로 '아기 예수’를 뜻하는 '엘니뇨’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 하지만 엘니뇨 현상의 메커니즘이 규명되고 예측을 위해 관측이 시작된 시기는 1980년대로,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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