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아이들의 100일잔치와 돌잔치의 유래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아이들의 100일잔치와 돌잔치는 한국의 전통적인 아이들의 축제입니다.100일잔치는 아기가 태어난 후 100일째 되는 날을 기념하여 열리는 행사입니다. 고대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생명력이 약해서 100일까지 살아올 수 있는 것이 큰 의미를 가졌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고자 100일잔치를 열었습니다.한편, 돌잔치는 아이가 1살이 되는 날을 맞아 열리는 축제입니다. 이는 예로부터 아이의 태어난 날을 생일로 보지 않고, 1살이 된 날을 생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를 기념하고자 돌잔치에서는 아이가 차례대로 다양한 물건들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칼은 용기와 용각을 상징하며, 가는 옷은 길을 닦는 데 쓰인 것으로 보았습니다.이러한 아이들의 축제는 지금도 한국에서 널리 열리며, 아이들과 가족들이 함께 기쁨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Q. 광해군은 왜 왕위에서 쫓겨난 것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광해군(1575-1641)은 조선 시대의 제17대 군주이며, 아버지인 성조가 죽은 뒤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인 인조왕후와 그녀의 왕비 당숙왕후 사이에서 대립이 일어나게 되면서 광해군은 각종 사안에서 왕후의 요구를 거절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대립 상황은 광해군이 세자들을 징발하고, 왕후와 당숙왕후를 각각 비롯한 8명의 왕비들을 처형하는 비극적인 사건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이러한 사건들은 그가 통치한 15년 동안 반역, 재난, 기근 등의 여러 문제에 직면했던 광해군의 통치력이 떨어지게 된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신진 사대부와 노론 사대부 등의 반대에 직면하게 되고, 1623년 군신이라는 이유로 왕위에서 폐위당하게 됩니다. 이후 광해군은 교도소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18년간의 생활을 보냈으며, 사망 후에도 그의 시신은 복궁되지 않았습니다.하지만 광해군은 그의 문학적 업적과 정치적 활동으로 인해 최근에는 재평가되기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