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조선 시대 과거 급제자는 어떤 대우를 받았습니까?
90년대 방영했던 사극 '일출봉'에서 이런 장면이 있었습니다.
성균관 유생들이 벽서를 붙이다가 체포되어서 포교들에게 심문받는 장면이 있었고,
주인공도 초시, 진사 시험에 합격하고 성균관 유생시절에는 , 포교들이 함부로 대했는데,
주인공이 대과에 급제하니까, 부상당한 포교가 '나으리'라고 호칭하면서 뭐라 경고하는데,
주인공은 대수롭지 않게 일부러 말로 포교를 제끼는 장면이 있습니다.
실제로 대과 급제자들은 어떤 대우를 받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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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과거시험에서 대과의 갑과 1등은 장원랑(壯元郞) 2등은 방안랑(榜眼郞) 3등은 탐화랑(探花郞)이라 불렀으며, 1등은 종 6품, 2등은 정7품, 3등은 종7품에 제수 되었다고 하는데요. 종6품은 현재에 군인 대위 혹은 공무원이면 5급 사무관 정도가 되겠고 정7품이면 6급공무원 혹은 중위, 주사보 정도가 될 것이고 종7품이면 7급 공무원 혹은 소위 장도가 되겠네여. 과거에 급제하면 살인죄 이외에는 체포나 감금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급제한 사람이 거주하는 부락 앞에는 소도(蘇塗)나무를 높이 세웠으며, 그 부락을 지날 때 일반인은 경의를 표했고, 말을 타고 가는 사람은 말에서 내렸으니 과거 급제야말로 치외법권력인 특권계급에 속한다고 할수 있지요. 생진과 급제자에게 주는 합격증서(교지)는 백지에다 써 주었기 때문에 백패(白牌)라 하였으며 대과에 급제하면 홍색지에 써 주었기 때문에 홍패(紅牌)라고 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