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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il Blazer
Trail Blazer23.04.30

화가 몬드리안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화가 몬드리안의 업적과 작품 스타일, 생애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관련 내용에 대해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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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2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30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몬드리안은

    네덜란드의 화가로 점, 선, 면만을 이용한 '차가운 추상'의 거장으로 꼽힙니다.

    1872년 네덜란드 아메르스포르트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아 화가였던 숙부에게서 그림을 배웠는데 이때 그의 숙부는 자연미를 중시했다. 후의 몬드리안의 작품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그 자체다. 20세에 교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교사 자격증을 땄고, 같은 해 암스테르담 국립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한다. 이때 당시만 해도 빈센트 반 고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림을 주로 그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11년 입체파의 그림을 접하면서 그의 작품이 크게 변화한다. 현대미술을 더 가까이 접하기 위해 그해 파리로 건너가 입체파를 연구하기 시작, 풍경을 점차로 추상화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1914년, 잠시 귀국한 사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네덜란드에 고립된 몬드리안은 이 즈음부터 수직, 수평선만으로 그림을 구성해나가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려진 작품이 우리가 생각하는 몬드리안 스타일의 그림인데, 이렇게 자신의 작풍을 정립한게 그의 나이 무려 42세. 그야말로 대기만성의 전형인 셈이다.

    1917년에는 네덜란드에서 다른 현대 화가들과 함께 더 스테일(De Stijl, 양식)이란 그룹을 형성하고 같은 이름의 잡지를 창간하였다. 그는 이 모임에서 자신의 작품을 '신조형주의'라고 규정하고 잡지에 자신의 신조형주의 이론에 대해 게재하였다. 그는 이 글에서 수직선, 수평선, 원색, 무채색만으로 표현되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진리, 근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였고 이를 위해 그림을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하였다고 주장한다.

    1919년 전쟁이 끝난 후 몬드리안은 다시 프랑스 파리로 향한다. 파리에서 생계유지를 위해 가벼운 수채화를 그리는 한편으로 계속 추상화 탐구를 지속하던 몬드리안은 이때 더 스테일 그룹과 멀어지게 된다. 이들에게 갈등을 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대각선을 그림에 넣느냐는 문제였다고 한다. 이후 그는 더 스테일 대신 바우하우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자신의 아틀리에를 자신의 작품 스타일에 맞추어 개조한다.

    출처: 나무위키 피트 몬드리안


  • 몬드리안은 미술이 될 수 있으면 수학적인 것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회화에서 자연적 형태와 색채를 배제하려고 했으며 직선과 원색에서 자신의 표현을 찾았습니다.

    직선의 표현에 있어서 수평적 에너지(陰)의 평온함과 수직적 에너지(陽)의 생기가 교차하면 '역동적인 평온함'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화면은 수평선과 수직선의 직교로 이루어진 그리드가 등장합니다. 색채에 있어서는 3원색(三原色)인 빨강, 파랑, 노랑, 3비색(三非色)인 흰색, 검은색, 회색의 무채색만을 사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