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은 1차 침략이후 17년 뒤에 왜 다시 쳐들어 온 것인가요?
거란은 1차 침략이후 서희의 외교력으로 다시 물러났다가 2차 침략을 했잖아요. 어째서 17년 동안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다가 갑자기 왜 다시 쳐들어 온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거란의 1차 침입은 993년(성종 12년) 10월에 일어났으며,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획득하고 철수하였습니다그러나 17년 뒤인 1010년(현종 1년) 11월, 거란은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삼아 2차 침입을 하였습니다. 이때 개경이 함락되기도 하였으나 양규가 이끄는 고려군이 강화를 맺고 물러가는 거란군을 크게 격파하였습니다. 그 후 1018년(현종 9년) 12월 소배압이 이끄는 10만 대군이 3차 침입을 해오자, 강감찬이 지휘한 고려군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거의 전멸시켰습니다. 이를 귀주대첩이라 합니다. 이후 두 나라는 전쟁을 중단하고 강화를 맺어 사신을 교환하였으나 고려는 북방 민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국방 강화에 힘썼습니다.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거란은 신하의 신분으로 왕을 시해한 강조를 벌한다는 구실로 2차 침입을 해온다.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인 강동 6주를 돌려받고,친송관계를 맺고 있는 고려에게 불만을 가지고 침입해온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에는 야율융서가 어머니의 소태후의 사망으로
섭정에서 벗어난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위엄을 보여야 했는데 마침 고려에서 강조의 정변이
일어났고 이를 구실로 고려를 재침공한 것입니다.
제 답변이 도움이 되셨으면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거란은 신하의 신분으로 왕을 시해한 강조를 벌한다는 구실로 2차 침입을 해옵니다. 하지만 강조를 벌한다는 것은 명목상 구실이었을 뿐, 실제로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인 강동 6주를 돌려받고, 여전히 친송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고려에게 불만을 가지고 침입해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