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개혁이전에는 노비제 폐지가 논의된적이 없나요?
갑오개혁때 노비제가 혁파되었는데 갑오개혁이전에는 조정에서나 사회에서 노비제도의 폐지에 대해서 논의된 적이 단 한번도 없나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갑오개혁이 일어난 후로 노비제가 전면 폐지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노비는 임금노동자로 대체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16세기 후반부터 조선왕조는 외부에서 날아온 연이은 강타에 휘청거렸습니. 임진왜란(1592~1599),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7)1)을 거치면서 조선의 국가 시스템이 큰 타격을 입은 것입니다. 자연히 노비에 대한 통제 시스템도 약해졌다. 노비들의 도망은 조선 전기에도 많았지만, 조선 후기에는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 게다가 임진왜란 이후에는 이들의 도망을 통제할 힘마저 크게 약해졌습니다. 여기에다가 노비들의 저항이 한층 거세졌기 때문에, 국가와 주인의 통제력은 더욱 쇠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인들이 노비들을 다루기 힘들어지면서, 17세기부터는 임금노동자의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고 합니다. 노비들이 임금노동자로 대체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노비와 주인 양측의 필요가 절충된 결과였습니다. 노비의 입장에서 임금노동자로의 변신은 신분적 속박의 탈피를 의미했습니다. 특히 도망노비들로서는, 객지에서 입에 풀칠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은 임금노동자가 되는 길뿐이었습니다. 노비주 입장에서도 거친 노비를 다루는 것보다는 임금노동자를 다루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한 일이었습니다. 노비제도가 법전 안에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상황 속에서, 현실에서는 노비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 광종은 노비안검법을 만들어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를 양인으로 만들었으며, 조선 초기 양천교혼의 폐단을 줄이고 양인을 늘리고자 노비종부법을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갑오개혁의 노비제 폐지는 이미 1800년대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온 거대한 신분제 폐지 운동의 흐름의 결과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94년갑오 개혁이전에 노비 세습에 관한 것이 법령화 된 적이 있는데 1886년(고종 23)에 노비 세습제가 폐지되고 이어 노비 소생의 매매 금지와 양인화가 법적으로 보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노비 자체가 폐지 된것이 아니고 노비 세습을 금한다는 내용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