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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한국시리즈 하면 누가 뭐래도 최동원 선수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1984년 한국시리즈 하면 누가 뭐래도 최동원 선수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그 당시 최동원의 한국시리즈 활약상은 영원히 깨지지 않을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 어떻게 선발로 4경기에 출전이 가능했는지.. 그런 결정을 한 감독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것인지 궁금합니다.

5개의 답변이 있어요!

  • 그 당시에는 선수 자원도 부족했고

    구단을 운영하는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을 때입니다.

    어떻게 보면 선수를 혹사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당시의 감독들은 투수의 어깨가 소모품이라는 걸 제대로 인지하고 못하고 있었기에 그런 무리한 기용이 가능했습니다.

    지금 그렇게 던지게 했다가는 팬들이 나서서 감독을 쫓아내야할 사항이구요.

    그리고 최동원은 당시 5경기 등판해서 선발로 3승 1패, 구원으로 1승을 올렸습니다. 물론 이 구원승도 사실상 선발만큼 던졌죠.

    결국은 1984년의 롯데 우승과 최동원의 선수생명을 맞바꾼 셈이구요.

    <1984년 한국시리즈 최동원 등판 일지>

    • 9월 30일 : 9이닝 완봉승

    • 2일 휴식후 10월 3일 : 9이닝 2실점 완투승

    • 2일 휴식후 10월 6일 : 8이닝 3실점 완투패

    • 10월 7일 연투 : 5이닝 무실점 구원승

    • 하루 휴식후 10월 9일 : 9이닝 4실점 완투승

  • 1984년 프로야구의 경우 지금과 같은 체계성이 하나도 없었습니다만 선수 혹사되는 것 무시하고 무조건 이길 수 있으면 선수를 기용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우리 나라 프로 야구 초창기 시절에는 대부분의 투수들이 공을 100개 이상 던지고도 그 다음날 또 경기에 나오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 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선수 보호 차원이라는 것은 생각 하지도 않았으며 오직 승리에만 집착을 했기 때문에 많은 선수들이 휴식없이 무리하게 경기를 해서 부상을 당하는 선수들도 많았습니다. 아마도 1984년 한국 시리즈에서도 최동원 투수 만한 선수가 없어기 때문에 최동원 선수가 이틀 간격으로 나온듯 싶네요.

  • 그당시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최동원 선수가 자원해서 그렇게 등판을 한것으로 이야기를 하는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선수는 없을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