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헌 안양은 학자들에게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고려시대에 있었던 회헌 안양에 대한 것인데요.
회헌 안양이 살던 그 시대에 학자들의 관념들과
회헌 안양으로 인해서 변화한 학문 이념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향(安珦), (1243 ~ 1306), 고려시대 학자, 명신(名臣), 初名은 유(裕),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 본관은 순흥 안씨(順興安氏),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출신 아버지는 밀직부사 (密直副使)를 지낸 부(孚)이며 어머니는 강주 우씨(剛州禹氏)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글 읽기에 힘쓴 안향은 18세(1260년, 원종 1년) 때 문과에 급제 교서랑(校書郞)으로 관직을 시작하였다. 상주판관(尙州判官)시에는 미신타파와 민풍(民風)쇄신에 노력하였으며 판도좌랑(版圖佐郞),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 국자사업(國子司業)을 역임하였고 1288년에는 우사의(右司儀)가 되고 좌승지(左承旨), 정동행성 원외랑(員外郞)을 거쳐 고려유학제거(高麗儒學堤擧)가 된 후 쇠퇴일로에 있던 성리학과 국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직위에 올라서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원나라에서 주자학의 보편화와 주자서의 유포 등에 따른 영향도 있었지만 안향이 여러 차례 걸쳐 원나라에 오가며 그곳의 학풍을 견학하고 직접 주자서를 베껴오고, 주자학의 국내 보급을 위해 섬학전을 설치하는 등 세반 노력을 경주함으로써 주자학이 크게 일어난 것으로 보아 안향을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로 평가합니다.
주자학이 성행한 당시 남송의 사정이 금나라라는 이민족의 침입 앞에 민족적 저항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었던 때라면 당시 고려 후기의 시대 상황 역시 이와 비슷하게 무신 집권에 의한 정치적 불안정, 불교의 부패와 무족의 성행, 몽골의 침탈 등으로 국내외적 위기가 가중되고 있을 때여서 민족주의 및 춘추대의 의한 명분주의의 정신, 불교보다 한층 주지적인 수양론 등 의 특성을 지닌 주자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한 것이 안향의 이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