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고대도시 페트라는 어떤곳이었나요?
아주 오래전 고대시대에 요르단의 요새가되었었던 페트라라는 도시는 현재는 흔적만 남은 정도로 확인되는데요
그당시 페트라는 어떤도시였나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페트라는 사막에 꽃피운 붉은 바위왕국이라고도 부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페트라는 요르단 남서부 내륙 사막지대의 해발 950미터 고원 바위산에 남아 있는 도시유적이다. 향료무역으로 이 일대를 장악했던 아랍계 유목민인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고대 도시다. 예로부터 이곳은 사막의 대상이 홍해와 지중해를 향해 갈 때 반드시 거치는 교역의 중간 기착지였다. 그 지리적 이점 때문에 이들은 사막의 한가운데에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 틈새에 도시를 건설했다. 뱀처럼 구불거리는 좁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 한참을 들어간 곳에 극장과 목욕탕, 완벽한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도시가 숨어 있다. 한동안 번성하던 나바테안 문명은 2세기께 이곳을 점령한 로마가 교역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급속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6세기경 발생한 지진에 의해 도시 전체가 흙으로 묻혀 있다가 19세기 초반에야 재발견된 곳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요르단 페트라 - 붉은 꽃으로 피어나는 바위산 (세계의 걷고 싶은 길, 김남희)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페트라(Petra)는 요르단 남부 사막 중심부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 약 2500년 전부터 인간이 살았던 역사 깊은 도시입니다.
안녕하세요. 페트라(Petra)는 요르단(Jordan)의 남부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 많은 역사적 유물과 유적지로 유명합니다. 페트라는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황갈색 산악지대의 중심에 있는 협곡 안쪽에 위치한 바위로 된 구조물들이 특징입니다. 이 도시는 로마 제국 시대에는 중요한 무역 중심지였으며,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영화 중 하나인 '마지막 성전의 유물'의 촬영지로도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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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페트라(Petra, '바위') 또는 알바트라(البتراء, Al-Batrā)는 요르단 왕국 서남부에 존재한 고대 도시, 혹은 해당
고대 도시의 유적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페트라는 아랍계 유목민 나바테아인들이 건설한 산악 도시로 붉은 사암(沙岩) 산을 깎고 내부를 파서 그대로 건축물을 만들었기에 동굴과 흡사한 특이한
내부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외관 역시 부조처럼 정밀하게 조각하여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출처: 나무위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페트라는 요르단 왕국 서남부에 존재한 고대 도시 혹은 해당 고대 도시의 유적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아랍계 유목민 나바테아인들이 건설한 산악 도시로 붉은 사암산을 깎고 내부를 파서 그대로 건축물을 만들어 동굴과 흡사한 특이한 내부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외관 역시 부조처럼 정밀하게 조각하여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기원전 1500년경부터 도시가 번영했고, 이집트, 아라비아, 페키니아의 교차점에 있어 중개무역과 교통의 요지라는 이점등으로 번영을 누렸으며 극장, 목욕탕, 상수도를 갖춘 시대의 첨단을 달리던 도시였으며, 기독교 성경에는 구약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여길 통과해 가나안으로 나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좁은 협곡을 무기삼아 로마군에게 저항하였으나 로마군이 수도관을 부수는 결정적 공격을 가하며 기원전 63년에 항복했습니다.
이후 로마의 속국이 되었다가 트라야누스때 속주로 편입되었습니다.
363년 지진으로 심하게 파괴되었고 추가로 6세기 경 또 일어난 지진으로 폐허가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암굴도시 페트라는 요르단에 위치해 있는데 1~2세기 경 새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요르단은 성경에 나오는 모압, 암몬 족속이 세웠습니다...이들도 이스라엘 족속과 사촌간이죠.
그래서 기독교를 믿지는 않지만 종교적으로 일부 공통적인 부분이 있었죠.
그리고 이 지역은 이집트와 서남아시아(중동)의 교통의 요지이죠.
그러다 보니 무역도 발달하고 이 곳에 부를 축적하기 위해 그들의 도시를 만든 것이 암굴도시 페트라입니다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페트라는 요르단 강 고슴도치 협곡의 중앙에 위치한 도시로, 고대 시대부터 중요한 상업 및 정치 중심지였습니다. 페트라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암석으로 만들어진 도시로 유명하며, 다양한 문화와 역사적인 유적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4세기에는 나바불루크 왕조의 수도로 사용되었으며, 기원후 2세기에는 로마 제국에 의해 정치적으로 통제됐습니다. 이후 7세기에는 이슬람교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페트라는 중요한 이슬람 거점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오랜 세월 동안 페트라는 인구와 중요성을 상실하였으며, 1812년에 스위스 탐험가 요한 루돌프 버크하르트가 "장미 도시"로 불리는 페트라의 유적을 발견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대규모의 관광지로서 유명하며, 198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페트라 시는 대부분의 건물들을 이와 같이 암벽을 파서 만들었으며, 이곳에는 극장과 온수 목욕탕, 그리고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현대도시못지않은도시형태로 지어 졌습니다. 현대의 수수께끼 유적의 하나로 남아있는 이곳은, 이집트의 피라미드과 더불어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 이며, 최근에는 영화 ‘인디아나존스/ 마지막성배’의촬영장소로유명해졌다고 합니다. 페트라는 요르단이 세계에 자랑하는 국보 1호의 역사적 유적입니다. 이곳은 기원전 1400~1200의 에돔과 모압의 접경 지역에 자리한 곳으로구약에서에돔의셀라(Sela)로 언급 되고 있다고 합니다.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바위를 나타 내고 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