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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기, 왕규의 난은 조작인가요?

고려 초기에 왕규의 난이 있었고, 서경의 왕식렴 군대가 진압했고 그 와중에 박술희가 처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현대의 한국사 학계에서는 조작이라는게 중론이라는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조작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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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답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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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식의 신
    지식의 신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왕규의 난"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은 10세기 초반에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21세기 초 현대 한국사 학계에서 "왕규의 난"과 관련된 기록이 조작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는 것은 제 기준 시점인 2021년 9월까지는 저에게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만약 이에 관한 새로운 학설이나 주장이 나왔다면, 그에 따른 연구와 논의가 진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기록이나 해석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할 수 있으며, 학계 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따라서 현재까지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이에 대한 최신 정보나 학계 내의 논의를 알고 싶다면, 현대 한국사 학계의 학술지나 연구논문을 참고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혜종을 보필하라는 태조의 유지를 받든 왕규는 군사적 기반이 약했기 때문에 오히려 혜종과 박술희의 보호를 받는 존재였으며 그의 손자인 광주원군은 왕위 계승 서열과는 거리가 멀어 왕규는 반란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고 보며, 오히려 이 사건을 왕위를 노린 정종과 광종의 음모로 보고 왕규의 난 이 아닌 왕식렴의 난으로 봅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규의 난이란 고려 2대 국왕 혜종 (惠宗) 때의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왕실의 외척 왕규 (王規)가 자신의 손자인 광주원군 (廣州院君)을 왕위에 등극시키기 위해 일으킨 반란입니다. 고려 초기 왕권이 미약한 데에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반란이 조작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고려 초기 왕규의 난은 조작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왕규의 난은 1174년, 고려의 제23대 왕인 인종의 외척인 왕규가 반란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왕규는 인종의 숙부인 왕식렴을 제거하고, 인종을 폐위하여 자신을 왕으로 옹립하려고 하였습니다.


    왕규의 난은 인종의 친정파에 의해 진압되었으며, 왕규는 처형되었습니다. 왕규의 난은 고려 초기의 정치적 혼란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고려 왕실의 권위가 크게 훼손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왕규의 난이 조작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왕규의 난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고려 초기에는 왕권과 외척 세력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왕규의 난을 비롯한 여러 차례의 반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왕규는 당시 고려의 주요 정치 세력 중 하나였습니다. 왕규는 인종의 외척이자, 대장군과 중서령을 역임한 권력자였습니다. 이러한 권력 기반을 바탕으로 왕규는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왕규의 난은 당시의 기록에 의해서도 증명됩니다. 왕규의 난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등 다양한 사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료들은 왕규의 난이 실제 일어난 사건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왕규의 난이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볼 때, 왕규의 난은 조작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