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역사에 대해서 질문이요..
우리는 신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배신의 역사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단재 신채호도 신라의 통일 과정을 나쁘게 보았잖아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의 통일과정을 나쁘게 보는 역사학자도 있던 반면에
최초의 한반도 통일 그 자체를 좋게 보는 역사학자도 있습니다. 판단은 개인의 몫입니다.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개개인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신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매우 주관적인 영역입니다
신채호선생처럼 배신의 역사로 받아들이는 이도 많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는 삼국통일로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단일 민족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으나 고구려의 남하정책을 막기위해 나제동맹 즉 신라와 백제 동맹을 맺었다가 신라 진흥왕이 약속을 깨고 백제를 공격한 점이나 당나라를 전쟁에 끌여들여 국토의 대부분을 당나라에 빼앗기고 사대주의와 영토를 축소시켰다는 문제 등은 부정적인 측면입니다.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AD 5세기 전반, 고구려의 부용국이었던 신라(호우명그릇과 광개토대왕릉비)
433년 반고구려 나제동맹 결성, 백제 코인 탑승.
493년 나제동맹 강화, 백제 코인 존버.
551년 백제와 손을 잡아 고구려를 공격. 나제동맹의 승리.
552년 백제의 한강 유역 공격, 백제 코인 손절
554년 관산성 전투, 백제 성왕의 전사. 반신라 코올 결성.
604년 한강 유역 탈환을 노린 고구려의 공격.
608년 원광의 걸사표(신라 승려 원광이 수의 황제에게 고구려 원정을 간청한 사건), 수나라 코인 탑승.
641년 백제의 의자왕이 40개 성을 빼았고 경주로 향하는 길목인 대야성마저 함락. 신라 멸망의 위기.
648년 김춘추의 당 방문. 나당동맹 결성. 당나라 코인 탑승.
660년 신라의 요청으로 나당연합군의 백제 공격, 백제 멸망.
668년 당군 평양성 함락, 고구려 멸망.
670년 설오유가 이끄는 신라군, 압록강 이북의 당군 공격. 고구려 부흥군 지원(보덕국 건국). 당나라 코인 손절
672년 석문 전투에서 신라군 대패, 문무왕은 당 고종에게 사죄서를 보냄으로써 재정비를 할 시간을 벌음.
676년 기벌포 전투 승리, 나당전쟁 종결.
683년 고구려 부흥군 손절(보덕국 철폐, 고구려계 귀족 숙청)
좋게말해 코인 탈 때와 손절할 때는 정확히 아는 나라...
나쁘게 말해 배신을 밥먹듯이 하는 못믿을 나라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와 함께 삼국을 이루었던 나라입니다. 신라는 668년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한반도 통일을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935년 고려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신라는 삼국 중 가장 오랫동안 존속한 나라였습니다. 신라는 고대 한국 문화를 발전시킨 공로가 있습니다. 신라는 불교를 수입하고, 율령을 제정하고,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신라는 또한 고구려와 백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한반도 통일을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죄를 저질렀습니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백성들을 노예로 삼고, 백제와 고구려의 문화를 파괴했습니다. 신라는 또한 고려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신라는 찬란한 문화를 발전시킨 나라이지만,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죄를 저질렀습니다. 따라서 신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복잡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신라의 찬란한 문화를 기억하고,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죄를 되새겨야 합니다.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는 물론 당나라를 백제와 고구려와의 전쟁에 끌여 드려 삼국 통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면에서는 외세를 끌어 들였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 봐면 아마도 신라는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백제와 고구려를 상대 할 수 없었다는 판단을 한 것이고 그 떄 당시에는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며 최선의 방법 일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이야 고구려가 통일을 했다면 아마도 중국과 북한의 땅도 우리의 영토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라고 할 수도 있으나 역사에서는 만일이라는 가설은 없습니다. 오직 결과만 존재 할 뿐 입니다. 만일 고구려 위주로 통일이 되었다면 그 이후에 중국과 더 많은 전쟁을 벌렸을 수도 있고 더 많은 오랑캐의 침입을 당했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