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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천사1004
Jy천사100423.10.30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고려시대때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이 서경 천도 운동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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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고려는 이자겸의 난으로 궁궐이 불타는 등 왕실의 권위가 상당히 추락해 있었습니다. 또한 이자겸ᆞ척준경 등이 현실적인 이유로 여진족의 금나라에 사대할 것을 결정한 상태였습니다. 이는 고려의 자부심에 타격을 준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자겸이 쫓겨났으나 그의 일당인 척준경은 이자겸을 제거한 공으로 여전히 건재했습니다. 그리고 이자겸이 쫓아낸 신료들이 서서히 복귀하는 등 매우 혼란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인종은 자신을 지지해 줄 세력이 필요했고, 침체된 분위기를 전환할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서경 출신의 정지상을 중심으로 척준경의 탄핵이 이뤄지면서 인종은 그들에게 주목합니다.


    그리하여 개경이 아닌 서경에 주목하고, 서경 출신 관료들을 우대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나 서경 출신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국제현실관이나 정치감각도 매우 황당했죠. 그러자 인종은 점점 서경 세력을 멀리하고 개경의 기존 지배층들과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궁지에 몰린 서경 세력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126년 일어난 이자겸의 난으로 인종은 기존 개경의 문벌 세력에 대한 환멸을 느꼈고 무엇보다 고려의 대부분 보수 문벌들은 이자겸을 지지했으므로 더더욱 그런 측면이 강했습니다. 즉 개경의 문벌이 왕이 아닌 외척인 이자겸에게 쏠렸다는 점은 개경에서의 왕권은 이자겸이 제거되더라도 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127년 척준경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공을 세운 정지상을 중심으로 새롭게 기존의 개경 보수 문벌 세력과 결을 달리하는 새로운 세력이 성장, 이들은 기존 개경 보수 문벌들과 달리 여진과의 관계에 있어 자주적인 모습을 표방, 이른바 자주적 문벌 세력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 자주적 문벌세력이 대부분 서경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이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개경파와 서경파의 대립 구도가 새롭게 형성, 이 때 개경파의 중심 인물은 새롭게 개경파를 이끌게 된 김부식이고 , 서경파의 중심인물은 정지상이 됩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종대 금과 군신 관계를 맺고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면서 궁궐이 불타면서, 인종의 권위는 실추되고 민심도 크게 동요하였습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인종은 승려 묘청과 문신 정지상 등 서경 세력을 측근으로 이용하여 개혁 정치를 추진하고, 정국을 수습하고 왕권을 재정립하려 하였습니다. 묘청 등 서경 세력은 풍수지리설을 앞세워 서경 천도를 적극 추진하게 됩니다. 또한 보수적인 문벌 귀족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서경에서 자주적인 혁신 정치를 추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들의 주장대로 서경으로 도읍을 옮기면 금이 굴복하고 주변의 나라들이 조공을 바칠 것이라며,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나라의 연호를 정하는‘칭제 건원(稱帝建元)’과‘금국 정벌’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러나 개경 문벌 귀족의 반대로 서경 천도가 불가능해지자, 묘청 등은 국호를‘대위’, 연호를‘천개’로 정하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1135). 이들은 서북 지방의 대부분을 점령하는 등 한때 위세를 떨치기도 했지만,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에게 1년 만에 진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