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가 징병제에서 나중에 모병제로 전환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나라는 징병제를 유지한 국가였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모병제로 전환하게 되었다고 들었는데요. 왜 모병제로 전환하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의 수취체제의 기본은 조용조입니다. 이는 균전제를 바탕으로 하였으며, 군사제도 또한 병농일치의 부병제였습니다. 그러나 점차 균전제가 이완되고 장원제가 확산되면서 부병제의 운영이 불가능해졌습니다.
또한 변방을 수비하기 위해 번을 설치하고, 절도사가 관할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절도사는 해당 지역의 군사는 물론 행정까지 담당하면서 지배력을 강화했습니다. 그리고 절도사는 부병이 아닌 모병으로 군대를 구성하여 운영하였습니다. 우리가 무질서하고 무기력한 군대를 "당나라 군대'라는 말은 여기서 기인했으며, 결국 황소의 난 진압에 절도사 주전충에 의지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당 중기 균전제의 붕괴와 절도사의 등장으로 부병제가 붕괴되고 모병제가 일반화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나라가 모병제로 전환한 이유는 전문성을 높여 국방력을 강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 현종 시기 전반기인 개원의 치 기간동안 당의 변방 방위를 담당하는 군진은 건아, 병모, 방정으로 이루어지며 중앙군은 확기와 금군으로 형성, 이들은 초기 모두 징병제를 채용하고 있어 부병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부병제의 근간을 이루는 균전제를 무너뜨린 요인인 심각한 계층분화가 다시 발목을 잡기 시작, 병역이 하층 소농민에게로 전가되는 상황이 강화, 따라서 부병제 , 확기가 그랬듯 군진제 또한 시작부터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거기에 기미 정책이 파탄아면서 당은 더 많은 군사력을 확보해야 했고, 그것을 근무연한의 연장으로 대처하면서 군을 이탈하는 것, 즉 배군 현상이 꾸준히 증가합니다.
당은 이에 대해 엄벌을 가하는 것으로 막아보려 하나 그것으로는 부족했고, 결국 부족한 병사들의 수는 모병제를 통해 채워야 했으며 모병제가 당의 군제에 차지하는 비중은 개원 연간을 거쳐 계속 증가합니다. 이에 당현종은 현실을 인정하고 개원 25년 모병제의 일종인 장정건아제를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