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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침팬지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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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부하다보니 공민왕오른팔 신돈은 사지가잘렸다던데 왜그런가요?

역사공부를 하다보니 공민왕 오른팔 신돈은 사지가 잘려 저세상갔다던데 왜 그랬는지가 궁금합니다.혹시나 아시는분 계시면 답변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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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답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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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369년 7월 공민왕이 신돈을 부담스러워하는 사실을 알게 된 선부 의랑인 이인은 한림거사라고 이름을 속이고 신돈이 반역을 꾀한다고 거짓으로 꾸민 글을 써 재상 김속명의 집에 몰래 보냈고, 김속명은 이를 공민왕에게 보고, 신돈은 곧 공민왕을 살해하려는 역모 고변에 휘말려 수원부에 깊숙히 갇혀있다가 1371년 7월 기현 , 이춘부, 이운목,과 함께 사형장에서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민왕의 신임으로 전권을 행사한 신돈은 권문세족에게 부담스러운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전민변정도감입니다. 따라서 권문세족은 끊임없이 모함했는데, 그 가운데 간통과 공민왕 시해입니다. 또한 공민왕도 신돈의 개혁을 부담스러워 했습키다. 이에 1369년(공민왕 18) 7월, 공민왕이 신돈을 부담스러워하는 사실을 알게 된 이인(李韌)은 한림거사라고 이름을 속이고 신돈이 반역을 꾀한다고 거짓으로 꾸민 글을 써 재상 김속명(金續命)의 집에 몰래 보내면서 공민왕에 대한 역모 고변에 휘말립니다. 결국 수원에 갇혀 있다가 2년 만인 1371년 7월 사형장에서 목이 잘려 죽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민왕(원의 부마)은 기존의 원나라 부마들인 선대 왕들과는 다른 행보를 통해 자주적인 국가를 건설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원에서 설치한 쌍성총관부를 폐지하고 국토를 복원하는 등 개혁을 도모하였습니다. 그러나 노국공주가 죽고 난 후부터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정치를 신돈에게 맡기는 바람에 공신과 현신이 참살되거나 내쫓내났으며 노국공주의 영전 건설 같은 무리한 공사를 일으켜 백성들의 원망을 사게 됩니다. 완악한 무뢰배들과 가까이하고 음탕하고 더러운 짓을 일삼게 되었습니다. 신돈은 공민왕의 신임을 이용하여 폐지되었던 사심관 제도를 부활시켜 중앙 조정을 완전히 장악할 수 없게 되자 지방향리층을 통해 지방과의 결탁을 도모하고자 했으며 수도를 충주로 천도하여 개경의 지배권력을 해체시키고자 했으나 공민왕의 반대로 뜻을 이루짖못하고 공민왕의 노여움을 사서 결국 참형을 당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