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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6.16

독일 나치가 유대인을 학대하고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독일 나치 해 유대인 홀로코스트는 아주 유명한데요 이렇게까지 나치들이 유대인을 싫어하고 학대하고 살인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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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나치 독일의 목표는 독일인의 생활권 확보로 그에 따라 순수 독일인이 아닌 유대인들은 동유럽에 있는 강제수용소로 쫓겨나게 됩니다.

    1941년 독일과 소련의 전쟁으로 동유럽 지역을 독일이 점령할 이유가 생겼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마다가스카르 내지 중립국으로 추방시키려 하나 이것이 여의치않자 1942년 반제 회의에서 최종 해결을 정했고 이에 따라 유대인 집단학살이 발생합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대인들에 대한 독일인의 박해는 식을 줄 몰랐다. 그들은 계속하여 전 중 · 서부 유럽의 유대인들을 괴롭혔다. 그들은 길가에서, 집에서, 발견되는 유대인들을 닥치는 대로 체포하여 수용소로 보냈다. 베를린에서는 수십만의 유대인이 정처 없이 떠났으며, 프랑스에서는 13,000명의 유대인들을 체포하여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냈다. 네덜란드과 슬로바키아, 그리스의 살로니카에서도 수많은 유대인들이 살상당하였다. 특히, 헝가리 내에 살던 유대인은 가장 큰 멸종의 위기를 경험하였다. 당시 유럽에 살고 있던 약 1100여 만 명의 유대인들 가운데 절반이 넘는 600여 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되었다.


    최종 해결은 러시아와 동유럽의 반유대주의의 자생적 폭력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그것은 제3제국에 의해서 고도로 조직화된 방법으로 저질러진 것이었다. '냉혹한' 조력자들과 빳빳한 제복을 입고 철십자 완장을 찬 수천 명의 고급 관료들과 독일 산업가, 법률가, 의사, 엔지니어, 회계사, 은행가, 사무원, 철도 공무원, 그리고 일반 노동자들의 협조와 조력으로 이룩해 낸 업적이었다. 이 파괴의 기계 장치는, 역사가 파울 힐버그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지적한 대로, 나치 독일같이 잘 조직화된 사회와 고도로 발달된 기술을 가진 나라, 그리고 SS 같은 완전한 지배가 가능한 전체주의적 방법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대량 학살의 과업은 하인리히 히뮬러가 최고 사령관으로 있는 SS에게 주어진 최우선의 임무였으며, 그것은 곧 "우리(독일인)를 파멸시키려는 이 민족(유대인)을 파멸하라."라는 독일인의 도덕적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었다. 대량 학살은 묵시 문학적 '이상주의'의 행위로 정당화되었으며, 그것은 새로운 푸른 눈을 가진 금발의 영웅을 창조하는 거룩한 의무에 봉사하는 일이었다.


    나치의 반유대주의야말로 유대인을 완전히 비인격화하고 서서히 비인간화하는 데 가장 성공적이었다. 끊임없는 선전 책동으로 보통의 독일인의 눈에 유대인을 사회적 부랑자, 전적인 국외자로 보이게 함으로써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수백만의 독일인들은 조직적으로 유대인은 비겁한 겁쟁이요 성적 타락자요 더러운 착취자요 위험한 혁명가요 궁극적으로는 해로운 유인원이라고 교육받았다.


    이러한 종류의 왜곡된 인간상은 SS의 신조로 자리잡았으며, 유럽에서 인종적 가치를 재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퍼져 나갔다. 이러한 역사적 · 지구적 과업의 완성은 유대인과 유대화된 유럽인의 멸절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으며, 병약해진 기독교와 썩은 마르크시즘으로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유대인에 대한 히틀러의 전쟁은 항상 두 선민, 즉 독일인과 유대인 사이의 지구적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세계를 전망하는 전쟁이었다.


    홀로코스트라는 엄청난 일이 가능했던 것은 히틀러의 반유대주의가 가지고 있는 이념적 · 신비적 · 비합리적 특성이 그의 비범한 정치 기술과 절대적인 권력, 고도로 훈련된 군대와 산업과 결합된 결과였다. 히틀러의 종말론적 세계관에서 볼 때,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이야말로 세계사의 열쇠이자 독일, 유럽 문명, 백인 아리안의 미래와 직결된 일이었다. 반유대주의는 히틀러가 1945년 베를린에서 스스로 생을 끝낼 때까지 붙잡고 있던 정치적 신조의 기반이었다

    출처 : 이스라엘사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나치 독일의 목표는 독일인의 생활권 확보였고,


    그에 따라 순수 독일인이 아닌 유대인들은


    동유럽에 있는 강제수용소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1941년 독일과 소련의 전쟁이 시작되고,


    동유럽 지역을 독일이 점령할 이유가 생깁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내지는 중립국으로 추방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여의치 않자


    1942년 반제 회의에서 최종해결을 결정했고,


    그에 따라 유대인 집단학살이 발생한 겁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단순히 종교문제가 아니며,


    개인 감정이 반영된 사건도 아닙니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히틀러는 세계사를 인종들 간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인식했고

    국제적 금융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이끌고 있는 유대인들이 게르만 민족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정의했습니다. 그러한 정의를 바탕으로 독일의 총리가 되고 유대인을 박해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