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를 좋게 평가하는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 다만 일본 사람들은 이토 히로부미가 근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여 근대화에 이바지하였으며,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고 존경하겠죠. 그러나 그가 한국에서 했던 행동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1841년 10월 16일 조슈번 스오국 구마게군(지금의 야마구치현 하카리시) 야마구치의 스오구니촌(周防國村)에서 농민 출신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후에 이토 다케베가 최하급 무사 신분인 아시가루가 되면서 이토도 무사 신분을 얻게 되었는데 어려서 가난한 생활을 하였지만 아버지가 무사인 이토 다케베의 양자가 되면서 그의 가정은 어느정도 여유가 생겼고 그러나 그의 신분은 미천하였고, 그는 입신양명을 꿈꾸게 된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면에서 열심히 살았던 것을 제외하고는 우리 나라에 좋은 일을 한 것은 없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