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이 왜 판소리의 본고장이 되었나요?
전라남도 보성에 여행을 가서 보면 판소리의 본고장 즉 성지라고 하더군요. 보성사람 누구나 소리 한자리는 한다고 하더군요. 보성은 어떻게 왜 판소리의 본고장이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보성은 판소리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보성은 전라도의 남쪽에 위치하여, 조선시대에는 남해안의 주요 무역항으로 번성했습니다. 이로 인해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었고, 판소리 역시 그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보성은 지리적으로 산이 많아서, 판소리 가수들이 연습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보성 사람들은 예전부터 소리에 대한 애정이 많아서, 판소리 가수들을 후원했습니다.
보성에는 판소리 명창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대표적인 명창으로는 김소희, 박동진, 정정수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보성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보성의 소리 문화를 익히고 발전시켰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보성은 판소리의 본고장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보성은 현재에도 판소리 전승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으며, 매년 판소리 축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참고 하셔서 도움되셨길 바래용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서편제의 본고장인 판소리의 성지가 보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안녕하세요. 노준형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판소리는 판 과 소리의 합성어로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라는 의미의 판과 소리를 의미합니다
현제 경기도와 충청도 판소리는 중고제 라불리며
전라도 동북지역과 서남지역의 판소리는 각 동편제
서편제라고 부릅니다 남성적인 동편제는 기교가 적고 템포가 빠르며 발림이 적은것이특징이고
여성적인 서편제는 슬프고 애절한느낌의 계면조를 많이쓰며 발림이 넉넉해 소리꾼과 고수의 연행적 요소가 발달하였습니다 특히보성은 유명한 명창분들과 전통이깊고 매년 소리축제를통해 서편제 소리축제와 대통령상을 통한 명창부 고수부 등등 소리꾼들을 육성및 표창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근대 판소리 보성소리의 창시자 생가가 보성의 영천마을에 있습니다. 서편제의 본고장도 보성의 영천마을입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보성’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판소리. 보성 판소리 성지는 조선시대 명창이자 서편제 창시자인 강산 박유전 명창을 비롯해 정재근·정응민·조상현 선생 등 서편제 계보를 이은 명창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판소리 산실인 회천면 영천리 도강마을 일원을 주무대로 박유전 선생 기념비, 정응민 선생 생가, 득음정 등이 자리한다. 보성 소리의 살아있는 신화 박유전 명창은 동편제의 고장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1852년 이곳 보성 강산마을로 이주해 서편제를 창시했다. 이후 동편제와 서편제의 장점을 조화시킨 강산제도 만들었다. 30명 이상 단체관람객이 방문하면 명창의 판소리·민요 등의 공연관람이 무료로 가능하다. 관람할 수 있다. 보성 소리의 역사와 정통성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조성됐다. 판소리 체험교실과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보성소리는 보성 출신의 박유전이 창시했으며 전라도 서쪽지역에서 전승되는 서편제의 분파 중 하나입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강산제라고 합니다. 이 강산제는 흥선대원군과의 일화에서 비롯됩니다. 흥선대원군은 판소리를 좋아해서 소리꾼들을 많이 후원했습니다. 그는 박유전의 심청가를 듣고 "네가 강산 제일이다."라고 해서 강산제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처럼 흥선대원군이 권좌에서 물러나고 한양을 떠나 판소리를 듣기 위해 방문했던 곳이 전라도 나주일 정도로 판소리로 엄청 유명했습니다. 영화 <서편제> 이후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리꾼들의 후원자였던 대원군이
1873년 권좌에서 물러나자 한양을
떠나 판소리의 본고장이었던 전라도
나주로 내려가, 광대 집안 출신 정재근을 만난 인연으로 그를 따라 보성에 정착한 후에 다시 소리의 새로운 지평을
펼쳐내기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