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조선에서 유배지를 보낼때 먹을곳이 많은 곳으로 보내달라고 한 사람이 누구인가요?
조선시대에서 유배지로 향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요.
그당시 먹을곳이 많은 곳으로 보내달라고 한사람이 누구이고 허락을 해주기도 했는지 그 지역은 어디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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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배인이 오면 고을 수령은 ‘보수 주인’을 정해 관리를 맡겼다고 합니다. 보수주인은 유배인을 감시하고 의식주를 책임지는 사람인데, 보수주인의 형편이 어려우면 유배인 스스로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고 합니다. 영조 때에는 전라감사가 유배 온 사람이 너무 많아 고을 사람들이 굶고 있어 유배된 사람들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는데 이에 정조 12년에 한 고을에 유배인이 10명을 넘지 않도록 했다고 합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유배인은 본가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보내줘 넉넉하게 보냈다고 합니다. 반면 형편이 안되는 유배인은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거나, 글씨를 써서 팔거나, 장사하거나 동냥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유배를 당하면서도 먹을 것이 많은 곳으로 보내 달라고 할 정도로 담이 큰 사람 이면 아마도 연산군 정도가 될것으로 추정 됩니다. 중종 반정(1506.9.2.)으로 폐위된 연산군은 경복궁을 나와 남여(藍與)인 평교자 (平轎子)를 타고 선인문, 돈의문을 나와 연희궁에 유숙하고 금포(김포)유숙>> 통진유숙>> 강화유숙>>교동고읍>> 고구리 안치소에 안치 되는데 행된 인원은 나인4명, 내시2명, 반감1명에 당상관 1명이 군사를 거느리고 호송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