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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혹한 쇠똥구리
고혹한 쇠똥구리24.01.31

조선시대에도 출생 신고를 하였는지 궁금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 출생신고를 하는 제도가 있잖아요 이런 출생신고 제도는 조선시대에도 존재를 하였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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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7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출생 신고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호적제를 통해 인구 파악 과정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호적 작성을 위해서는 호주가 자기 호의 구성을 기록하여 관에 제출하는 '호구단자'가 있는데, 3년에 1번씩 정해진 형식대로 작성하여 제출한 각 호의 구성원 상호아을 자료를 호적을 수정하여 재작성하였습니다.

    호구단자에는 연도, 주소, 호주, 호주의 4조, 처, 처의 4조, 동거인, 노비 등에 신분 또는 관직, 성명, 성별, 연령 등을 기재하였습니다. 호구단자는 2부 작성하여 바치고, 이임, 면임이 확인하여 소속 군현에 들어가고 1부는 호적을 수정하여 자료로 이용합니다.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요즘처럼 별도의 출생신고제도가 없었습니다.

    대신에 호주가 쥐띠. 토끼띠.말띠.닭띠의 해엧적성해서 관에 바치는 호구단자에 출생자의 이름을 올리고,이를 군거로 관에 보관중인 호적대장에 이름이 기입되면 그

    존재를 법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염민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지금과 같은 출생신고같은 제도는 없었지만

    족보는 존재하였습니다. 주로 양반계층에서 족보를 이용해 출생기록을 남겼으며

    평민과 노비 등은 기록이 전무하였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답변자에게 힘이되는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출생 신고는 호패법 실시 이후인 1434년 부터 호적에 기재되었습니다. 이전에는 3세 이하의 어린이는 호구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출생 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호패법 실시 이후에는 모든 백성이 호적에 등재되어야 했기 때문에 출생 신고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요즘처럼 별도의 출생신고제도가 없었습니다. 대신에 호주가 쥐띠 토끼띠 말띠 닭띠의 해에 작성해서 관에 바치는 호구단자에 출생자의 이름을 올리고 이를 근거로 관에 보관중인 호적대장에 이름이 기입되면 그 존재를 법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출생 신고제도가 없었습니다. 다만 호적 제도가 있었는데 고려시대에는 주군(州郡)에서 호구 조사를 실시하여 호적을 작성하고 그것을 각도의 지방 장관인 안렴사(按廉使)에게 올려 보내면 안렴사는 다시 그것을 중앙의 호부(戶部)에 올렸다고 합니다. 원칙적으로 식년마다 작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고려시대의 경우 남아 있는 호구 자료가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4.01.3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출생신고라는 개념보다 인구 통계를 위해 호구단자를 관청에 신청했다고합니다. 호구단자란 조선 시대에 호주가 가족 사항을 적어 지방 수령에게 신고하던 서류를 말하며 3년마다 호구 조사를 할 때에 적어 냈다고합니다.